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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저출산, 국가 주도 벗어나 사람 중심 정책으로 전환”

등록 2017-12-19 20:00수정 2018-10-15 18:56

지난달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푸치니홀에서 30~40대 부모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한 아이를 안고 활짝 웃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공
지난달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푸치니홀에서 30~40대 부모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한 아이를 안고 활짝 웃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공

〔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요즘 젊은 여성들이 엄마가 된 뒤 느끼는 절망과 좌절감의 깊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평등 교육을 받고 자란 그들은 마치 한순간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라고 말했어요. 왜 이런 전쟁 같은 삶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분노했습니다. 반면 아이를 키우는 남성들을 만나보니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가치관에서 많이 벗어나 있더군요. 가족과 함께하고 아빠로서 행복을 느끼고 싶어하는 욕구가 매우 강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이런 젊은 여성과 남성들의 변화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구나 절감했습니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저출산의 현실을 절절하게 짚었다.

“엄마 아빠 절망과 행복 욕구 큰데
사회가 이들의 변화 못 받쳐줘

저출산 현상은 여성의 ‘출산 파업’
보편적 복지로 여성들 삶 바꾸어야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
보육 인프라 투자에만 집중”

지난 2001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처음으로 1.3명을 기록해 초저출산 사회로 진입했다. 2016년 합계출산율은 1.17명으로 전년보다 0.07명 감소했으며, 출생아 수는 1970년 통계작성 이래 가장 낮았다.

정부는 지난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4대 복합·혁신 과제’ 중 하나로 ‘교육·노동·복지 체계 혁신으로 인구절벽 해소’를 선정하는 등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독립 사무처를 신설하는 등 위원회의 조직과 기능을 확대 개편했다. 특히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대통령이지만, 부위원장직을 신설해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위촉했다. 김 부위원장은 민간위원 16명과 정부위원 7명으로 구성된 제6기 위원회를 이끌고 이날 공식 출범을 선포했다.

과거 산아 제한 정책 구호처럼

지난 9월 말 사무처가 생긴 뒤 김 부위원장은 집중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만났다. 간담회나 현장 방문을 40여회 했다. 전문가와 육아 당사자들이 참여한 콘퍼런스에 참여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김 부위원장은 저출산 현상은 임신·출산의 주체인 여성이 ‘출산 파업’을 한 결과로 바라봤다. 그는 “보편적 복지가 깔리고 여성들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성평등 복지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그러한 메시지를 계속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청년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도록 청년들의 일자리·주거 문제 등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위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진단했다. 과거 산아 제한 정책을 할 때와 유사한 국가 주도적 관점으로 저출산 현상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정책 구호만 봐도 그렇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치던 1970년대 구호처럼 2008~2010년 정책 구호는 ‘가가호호 아이 둘셋 하하호호 희망 한국’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허전한 한 자녀, 흐뭇한 두 자녀, 든든한 세 자녀’라는 정책 구호를 내세웠다. 다양한 가치가 논의되고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어야 할 다원화된 사회에서, 정부가 한 자녀는 ‘허전하고’ 자녀를 많이 낳아야만 ‘희망 한국’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제는 국가 주도 관점을 탈피하고, 개인과 가족의 삶과 행복을 존중하는 ‘사람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국민 의견 청취를 위해 연 타운홀 미팅에서 30~40대 부모들이 조를 나눠 출산, 육아의 걸림돌과 디딤돌 정책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공
지난달 2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국민 의견 청취를 위해 연 타운홀 미팅에서 30~40대 부모들이 조를 나눠 출산, 육아의 걸림돌과 디딤돌 정책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공

양대 노총과 젊은 세대도 참여

그는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 대책은 보육 인프라 투자에만 집중됐고, 전문가 및 육아 당사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생활 균형, 성평등 관련 정책 분야 투자가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육아기 근로자의 근로시간 문제 해결, 남성의 육아 참여, 성평등을 위한 여성 경력 단절 방지 정책 등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특히 지금 현재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육아휴직 등이 잘 지켜지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해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방지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인지 이날 공식 출범을 밝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는 양대 노총 간부가 모두 포함됐다. 여성위원 비율도 기존 5기 2명(22%)에서 8명(47%)으로 늘었다. 20대인 조소담 미디어 닷페이스 대표 등 젊은 위원의 참여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바라는 정책 개발에도 힘을 쏟는다.

김 부위원장은 “선진국을 보면 실질적인 성평등 사회 구현과 함께 여성의 고용률이 오르면서 출산율도 회복됐다. 이를 위해서는 남녀 모두 일·생활 양립이 가능하도록 남성 육아휴직 지원, 돌봄의 확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해소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 여성 고용률이 55%였을 때 출산율은 1.7명으로 저점이었는데, 여성 고용률이 60%로 오르자 출산율도 2.1명으로 반등했다. 영국과 스웨덴도 여성 고용률이 각각 60%, 70%였을 때 출산율이 1.7명에 그쳤으나, 여성 고용률이 각각 68%, 80%까지 오르자 출산율이 1.9~2명까지 올랐다. 김 부위원장은 이처럼 선진국의 사례 등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일-생활 균형과 성평등 정책 초점
여성 경력단절 방지 등 우선 검토

여성 고용률 오르면 출산율도 회복
육아휴직 지원, 돌봄 확대 뒤따라야”

간담회 등 현장 목소리 40차례 수렴
다음주 대통령 참석 대국민 보고대회

18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앞으로의 저출산 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 양선아 기자
18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앞으로의 저출산 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 양선아 기자
“부처 협의·기업 협조 만만찮아”

3선 국회의원인 김 부위원장은 현재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젊은 시절 한국여성민우회 공동 상임대표 등을 하며 여성운동을 해왔던 그이기에 누구보다도 여성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세대는 다르지만 저는 젊은 여성들의 심정을 잘 안다고 자신합니다. 이번 위원회도 여성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분들로 구성했습니다. 위원회 활동을 막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부처 협의 등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또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재정도 많이 들고 민간 기업들 협조도 필요한데 그것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대통령이 위원회의 위상을 강화시켰고, 대통령이 책임지고 이 문제를 챙긴다고 한 만큼 과거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 확신합니다.”

여성들이 자아실현을 하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국회에 왔다는 그다.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장하는 그는 다음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그동한 구상한 저출산 정책을 보고할 예정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에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충해 이용 아동 수 기준 40%까지 늘리겠다는 한 공약과 관련해, 임기 초기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배분해 국공립 보육 인프라 확충을 하는 것이 낫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하려면 매년 국공립 어린이집을 500곳 이상 확충해야 하지만, 내년 복지부의 예산안에서 드러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계획은 450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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