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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쇄골 부서져도 “오토바이 물어내”…청소년 위험노동 잔혹극

등록 2017-12-18 05:02수정 2017-12-22 16:51

열명 중 한명꼴 알바로 돈 벌지만
사업주는 근로계약서 안쓰거나
비용전가·손실회피 ‘불공정 계약’
최저임금도 못받은채 착취 내몰려
헬맷 못쓰고 배달하다 교통사고 사망
막내 잃은 부모 “이게 다 세월호다”

지난 10월25일 밤 10시30분, 충남 천안시 ㄱ족발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홍아무개(17)군이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가 비보호 좌회전 차량에 치여 쓰러졌다. 다가올 겨울방학에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친구들과 외국 여행을 가겠다며 몰래 시작했던 아르바이트였다. ▶관련기사 : 청소년 노동자 권리, ‘알바 10계명’ 아는 만큼 힘이 된다

사고 당시 심정지 상태에 빠졌던 홍군은 심폐소생술을 거쳐 단국대학교 천안병원 외상센터로 이송됐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홍군은 그 뒤로 단 한번도 눈을 뜨지 못했고, 한달 뒤인 11월23일 뇌부종, 다발성 장기손상 등으로 숨졌다. 홍군이 일했던 족발집 업주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규정되어 있는 ‘보호구 지급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근로기준법상 청소년 야간근로 금지 조항도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막내아들을 잃은 아버지 홍아무개(52)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세월호가 달리 있는 게 아닙니다. 작은 사건 같아도 이게 다 세월호예요”라며 흐느꼈다. 홍군의 부모는 ‘어린 나이에 떠난 자식은 화장해야 한다’는 주변 권유를 뿌리치고 가족이 함께 살던 아파트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 공원묘지에 홍군을 묻었다. 홍군의 발인이 진행된 지난달 25일 첫눈이 내린 천안시 동남구 천안공원묘원에는 교복을 차려입은 홍군의 친구 60여명이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지켰다.

홍군을 떠나보낸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부모는 복받치는 억울함과 그리움을 떨치지 못한다. 홍군의 아버지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 이렇게 억울하게 죽는 일이 사라져야 막내를 마음속에 편히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위험천만한 청소년 아르바이트는 홍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청소년 통계’를 보면 중·고등학생 열명 중 한명꼴(11.3%)로 아르바이트를 경험하지만 청소년 노동에 대한 인식은 바닥에 머문다. 청소년의 노동 안전 등에는 눈감은 채 그저 값싼 노동력으로만 취급하는 사례도 찾기 어렵지 않다. 반대로 이런 상황을 막고 청소년 노동을 보호하려는 제도적 대응은 찾아볼 수 없다. 방치된 위험 속에 수능시험을 마친 청소년들이 대거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는 겨울방학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있다.

청소년 노동 보호를 위한 조항 ‘유명무실’ 홍군과 함께 일했던 친구들 사이에서 해당 업체는 ‘부모님 허락도 안 받고 면허증 검사도 안 하고 일을 시켜주는 곳’으로 유명했다. 홍군은 족발집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은 물론, 만 18세 미만 청소년을 고용할 때 업주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부모동의서도 요구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홍군의 아버지는 “이 추운 겨울에 오토바이 배달을 한다고 했으면 동의서를 써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막내를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업주가 빼앗아간 셈”이라고 말했다.

노동법의 여러 권리 보장 조항이 아르바이트 청소년에게 허울뿐인 사례는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법이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이주혜(17)양은 용돈을 벌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두달 동안 한 편의점에서 평일 저녁 4시간을 일하며 시급 4천원을 받았다. 2016년 최저임금 시간당 6030원의 3분의 2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달에 20일을 일한 이양은 주휴수당까지 57만8880원을 받아야 했지만, 실제 손에 쥔 돈은 32만원에 불과했다. 이양은 “일을 잘하면 시급을 올려주겠다는 업주의 말을 믿고 한달을 일했지만, 다음달 시급은 고작 200원 올라간 게 전부였다”며 “업주에게 최저임금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최저임금 맞춰줄 거면 어른을 쓰지 널 왜 쓰냐’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했다. ‘원래 다 그런 건 줄 알았다’며 업주의 주장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던 이양은 올 11월 광주 청소년노동인권센터의 노동인권 강의를 듣고서야 체불임금 신고 방법을 알게 됐고, 현재 해당 업체를 신고한 상태다.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 교육은 충분치 않다. 2014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 중·고등학생 4천명을 상대로 한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를 보면, 노동인권교육을 경험한 청소년들은 전체 응답자 가운데 16.5%(648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교육은 고스란히 열악한 노동 현실로 이어진다. 같은 실태조사에서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청소년 가운데 ‘부당처우를 경험한 뒤 대응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71.7%에 이르렀다.

이연주 노무사는 “청소년이 노동 환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알바 주제에 반항한다’고 받아들이는 업주가 많고, 심한 경우 강제로 해고되는 사례도 있다”며 “어른들은 겪지 않거나 금방 해결될 일도 청소년이 겪으면 해결하기 힘겨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노동법은 멀고 인권은 ‘모르쇠’
시급 4천원 ‘나중에 인상’ 꼬드낀 업주
최저임금 요구에 “어른 쓰지 왜 널…”
부모·교사 도움 못받는 학교밖 아이들
체불에 사고책임 전가 ‘불공정 계약’

폭언·폭행하고 ‘잔반’ 먹인 유명식당
노동자 14명 체불임금만 4천여만원

우리의 아이들 보호 급하다
10명 중 3명꼴 체불 등 부당대우
‘부당처우 받아도 참는다’ 70% 넘어
‘취약계층 전담’ 근로감독관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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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에게는 더욱 차가운 현실 학교 밖 청소년에게 노동인권은 더욱 먼 이야기다. 일부 악덕 업주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다 부모나 선생님 등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점을 이용해 이들 청소년과 엉터리 계약을 맺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절에 맡겨져 고아로 자라온 ㄱ(18)군은 지난 8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 배달대행 업체를 찾아간 ㄱ군은 업주가 내민 얼토당토않은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계약서에는 ‘40일 동안 매일 임금 중 만원씩 적립 후 퇴사할 때 지급(말없이 안나오는 경우 안 줌)’, ‘무단결근 시 회사 업무손해비용으로 10만원 공제, 무단지각 시 시간당 만원 공제’ 등의 불공정한 내용이 담겼다. 이는 임금 전액을 매월 정해진 날에 지급해야 한다는 임금 지급 원칙을 어긴 것이다.

심지어 계약서에는 배달을 하다 업주 소유의 오토바이를 잃어버리거나 교통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은 ㄱ군이 진다는 내용도 있었다. 사업주를 위해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손해는 사업주의 관리·감독 책임과 노동자의 책임 범위를 따져야 하는데, 모든 책임을 ㄱ군에게 떠넘긴 것이다. ㄱ군은 지난 10월 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치료비는커녕 계약서에 따라 오토바이 수리비 240여만원을 업주에게 지불해야 했다. 정송도 노무사는 “ㄱ군의 사업주는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과실의 책임을 모두 ㄱ군에게 돌리는 불공정 계약을 했다”며 “노동인권에 대한 지식이 없고 주변에 도와줄 이가 없는 학교 밖 청소년의 상황을 이용하는 노동착취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청소년 노동’ 전담 감독 있어야 지난달 전남 담양군의 한 유명 숯불갈비 식당에서 청소년 노동자들을 상습적으로 학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식당 매니저가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에게 폭언·폭행을 하고, 손님이 남긴 고기를 이들의 반찬으로 내주는 등의 부당한 처우를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지난 7월 피해자 2명이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 제보하면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이어진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조사에선 최소 14명의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상습적으로 폭언·폭행을 당했고, 체불임금도 4천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이 인권 사각지대를 헤어나지 못하는 실정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2014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를 보면,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청소년 가운데 31.9%가 임금이 밀리거나 초과근무수당을 못 받는 등 임금 관련 부당대우를 받은 것으로 응답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비율은 25.5%에 그쳤다. 고객 또는 고용주·상사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은 적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각각 12.5%, 9.7%로 나타났다.

헌법 제32조 제5항은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청소년 노동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는 미비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교육 당국도 노동 당국도 ‘청소년 알바’의 권리를 살피거나 문제점을 살피는 전담 관리부서를 갖춘 곳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이로사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당국이 손 놓고 있는 사이 청소년들은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억울한 노동 조건에 순응하거나, 견디다 못해 무단결근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이연주 노무사는 “근로감독관을 대폭 증원해서 사후에 위반 업체를 벌주는 것이 아니라 사전감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청소년 등 노동 취약계층을 전담하는 감독관을 지정하는 등 전반적 대응체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지혜 황금비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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