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마석공단 이주노동자의 벗 이정호 신부
1990년 6월 이제 갓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은 이정호(60) 신부가 경기 남양주시 마치고개를 넘어 마석에 들어설 때만 해도 그곳은 한센인의 땅이었다. 이 사회에서 소외받은 병자와 가족들이 모여 마을을 이뤄 돼지와 닭을 키우며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동남아시아계 외국인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 신부가 “누구냐”고 묻자 “돈 벌러 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양계장을 빌려 기계를 들여놓고 가구를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들이었다. 이렇게 소외된 이들 옆에 차별받는 이들이 터를 잡았다.
환란이 닥치던 1998년 즈음 마석가구공단의 이주노동자는 2000여명에 달했다. 고용허가제 이전 산업연수생 제도가 시행되던 시절, 이들은 대부분 미등록이었다. 국가는 비자 없는 이들을 ‘불법체류자’라고 못박는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 사장이 이주노동자를 때리고 욕하고 임금을 떼어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공단에서 폭력을 말리고 떼인 임금을 받아주는 건 이 신부의 일이었다. 강제단속에 걸려 아이만 공단에 홀로 두고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이주여성을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찾아가 일시보호 해제를 이끌어내는 것도 이 신부가 관장을 맡고 있는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가 할 일이었다.
지난 27년 동안 공단에서 이 신부는 ‘이주노동자의 벗’이자 보호자, 질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8일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인권선언 69주년을 맞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인권상’ 시상식에서 국민훈장(동백장)을 받았다. 이 신부는 12일 전화 인터뷰에서 “예수를 믿기 때문에, 사제이기 때문에 한 일이다. 곤하고 가진 것 없고 부족하고 좌절하고 쥐어터지는 사람들과 함께하라는 게 예수의 가르침이다”라며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이주민’이란 표현이 없다. 이번 기회에 이주민이 한국 사회의 한 축으로 인식되고 마석을 비롯한 여러 곳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공회 사제 서품 뒤 27년 한길
처음 마석 찾을 땐 ‘한센인 땅’
사장 폭력 말리고 임금 받아주고
공단서 이주민 보호·관리자 노릇 “이주민, 한국사회 한 축 인정을”
8일 인권상시상식 국민훈장 받아
그동안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에 와서 커피 한잔 마시며 노동의 고단함을 털어놓거나 아픈 동료의 안타까운 사연을 얘기하며 해결책을 찾은 이들은 줄잡아 수천명에 이른다. 24년 동안 공단에서 일하고도 체류권조차 얻지 못하고 2015년 고향 필리핀 민도로섬으로 돌아간 로저는 센터와 함께 필리핀 공동체를 관리했다. 서울 망우동 산부인과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부모 사이에 태어나 국적 취득은 꿈도 꾸지 못하고 2013년 부모 나라인 방글라데시로 떠난 ‘무국적 소녀’ 마히아는 센터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출신이다.
이 신부는 성공회 소속이면서도 무슬림이 다수인 공단에서 종교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어울렸다. 방글라데시 출신 자카리아가 난치병에 걸려 숨졌을 때는 이슬람 성직자인 이맘과 함께 그의 장례를 치르고 기도했다. 공단의 형광등 제조공장에서 아르곤 가스를 주입하는 일을 하다 말기 암에 걸린 네팔 출신 노동자이자 불교신자인 람이 가톨릭 세례를 요구할 때는 그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세례명을 주었다. 이 신부는 “그렇게 27년을 사목해도 (이슬람을 믿는) 한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으로 바꾸지 못했다”며 웃었다. 그는 “이슬람 신자인 그들에게 단 한 번도 예수 믿으라 하지 않았다. 공존이라는 상생의 의미로 종교가 해석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이주노동자 200만 시대, 초고령 사회를 눈앞에 둔 이 나라의 이주민 정책이 좀더 포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선진국처럼 한국에 별 탈 없이 오랫동안 머문 이들에게 체류권을 주는 방안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한국을 떠나 본국으로 귀환한 노동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을 경험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마음이 아파요. ‘한국에서 장애를 얻었다, 전세금 떼이고 아직 못 받았다, 퇴직금 못 받았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는 “초고령화, 저출산 시대에 한국엔 이주민이 필요하다”며 “나중에 (선배 이주민의 경험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한국을 찾을 사람들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 신부는 내년 1월9일 방글라데시에 간다. 2년째 진행되는 ‘청소년, 다문화에 말을 걸다’ 프로그램을 위해서다. 청소년 25명을 포함한 40여명과 함께 공단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루하종, 문시간지를 찾아 교류 활동을 하고 쓰레기통 배분 사업을 한다. 방글라데시는 분리수거가 잘 안 되는 곳이다. 이번에 훈장과 함께 받은 상금 200만원으로 빈민층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기로 한 것도 그의 가슴을 벌써 들뜨게 한다.
그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너희 땅에 함께 사는 외국인을 괴롭히지 마라. 너에게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을 네 나라 네 사람처럼 대접하고 네 몸처럼 아껴라.”(레위 19:33-34절)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지난해 1월 처음 열린 ‘청소년, 다문화에 말을 걸다’ 행사를 위해 방글라데시를 찾은 이정호 신부가 현지 어린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제공
처음 마석 찾을 땐 ‘한센인 땅’
사장 폭력 말리고 임금 받아주고
공단서 이주민 보호·관리자 노릇 “이주민, 한국사회 한 축 인정을”
8일 인권상시상식 국민훈장 받아
지난달 19일 이정호 신부(가운데)가 경기 남양주시 마석가구공단 내 한 식당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제공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