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에 직원들과 시민들이 드나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금융감독원은 ‘금융산업계 검찰’로 불린다. 설치 근거를 담은 법규 1조에 선진, 건전, 질서, 공정 따위 낱말들이 포진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세계 취업을 꿈꾸는 이들에겐 한국은행과 함께 첫손으로 꼽힌다.
그곳조차 부정채용 비리로 더럽혀져 있다는 사실이 올 9월 감사원 감사 결과로 알려졌다. 이후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 이병삼 부원장보 등 간부 5명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한 남성이 지난달 16일 검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저녁 6시였어요. 참고인으로 와달라 하길래 지원자가 한 둘이 아닐 텐데 왜 나한테 요청할까 싶었습니다. 퇴근해 기사를 전부 다 찾아봤어요. 거기 내 얘기가 있더군요.”
검찰 조사 덕에 부정채용의 전말을 알게 된 정아무개(32)씨는 ”(유력자들) 부탁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조작되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고, 읽고도 믿기지 않았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그는 금감원 ‘2016년 5급 공채’(2015년 9월~12월) 때 금융공학 직렬로 지원한 79명 중 1명이었다. 2명 채용 예정이었다. 정씨는 49명과 함께 필기시험을 보았고, 5명과 1차면접을, 2명과 2차면접(최종)을 다퉜다. 최종순위 2위. 금감원은 그러나 1~2위를 떨어뜨리고, 3위 응시자(방아무개씨)를 붙였다.
금감원은 서울 소재 대학을 나온 방씨에게 지방인재 혜택을 줬다. 방씨가 당초 대학을 허위 기재했다. 금감원은 알고도 묵인했다. 면접점수도 몰아줬으나 필기점수가 낮아 여전히 합산점수 3위. 급기야 전직 경력이 있던 1~2위 응시자의 평판 조회를 하고 이를 근거로 당락을 뒤엎었다.
금감원 실무팀이 보고한 정씨의 세평은 “(이전 직장서) 단기간 퇴사한 것은 지점 근무 당시 약정실적 스트레스로 영업직이 본인에게 맞지 않아 그런 것이며 대인관계에 어려움은 없었음. 당시 팀장 기억으로는 평판 좋았다고 함”이었으나, 최종보고서엔 “증권회사에서 약정실적 스트레스로 단기간에 퇴사”가 전부였다.
금감원 채용절차는 공무원 시험과 유사한 편이다. “시험 잘 친 사람은 면접 때 욕만 안하면 붙는다”고 말할 정도다. 정씨는 분노했다. “금감원은 100개씩 원서 넣고 30~40개 떨어지는 기업 중 하나가 아니다. 1년을 준비해 최종에서 떨어지고 겨우 잊고 살아가려는데, 이렇게 드러나고 막상 정부, 기관, 언론 어디서도 피해자 구제에 대해선 얘길 안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금감원을 “특유 업무 때문에 너무 동경했다.” 서울 소재 대학 경영학을 전공한 정씨는 2012년 금감원 최종면접 끝 고배를 마셨다. 다른 공기관에 입사했다. ‘꿈’을 밀쳐내진 못했다.
2014년 회사 근처 독서실을 끊어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출근했다. 또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2015년 휴직을 신청했다. “다른 걸림돌 없이 100%로 공부해보고 안되면 정말 단념하겠다고 했어요. 아내도 내가 안쓰러우니까 육아휴직하자고 했죠. 남자 육아휴직은 경력 부담도 크고 조직 안에선 평생 불이익을 감당하고 가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올인을 했는데….”
세 번째 최종면접 탈락이었다. 정씨는 2015년 12월8일 금감원 최종면접 뒤 인근 카페 앞에서 다른 면접자들 2명과 환담하며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꿈을 접겠다던 정씨는 대신 입사한 방씨에게 결결이 금감원 소식을 물어야 했다. “대학, 대학원도 서로 다 알아요.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니 지방인재 혜택을 봤대요. 미리 누군가 언질하지 않았다면 어떤 응시자가 그렇게 적을 수 있겠어요?”
정아무개씨가 2016년 금융감독원 신입공채 최종면접 대상자로 합격한 뒤 일정을 고지받은 이메일. 정씨는 당시 작성한 전형 후기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들러리’였던 셈이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씨는 피해보상 소송을 하기로 했다. “혼자 고민하고, 비용도 혼자 감당해야죠. 부정청탁으로 뽑힌 사람들은 아직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데,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이 드러나도 별 관심 못 받잖아요.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게 너무 안타깝고 억울합니다.”
선진, 공정 따위를 머릿말 삼은 금감원은 2016년 신입공채 당시 필기시험 합격자를 예정보다 늘리고, 면접점수를 몰아주고, 세평을 임의 적용하는 방식으로 특정 응시자 여럿을 구제(감사원 감사결과)했지만, 채용 피해자들을 구제할 계획은 아직 없다.
그는 인터뷰 뒤 한밤중 기자에게 전화했다. “제가 잘 하는 일일까요? 피해자인데도 (금감원 상대로 소송한다는) 꼬리표가 붙는 건데 그럼 정말 영영 금감원 갈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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