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최저임금을 사회규범으로, 차별시정조치를 상식으로

등록 2017-11-16 19:58수정 2017-11-16 21:27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 리처드 프리먼-문성현-이정우 대담

‘이 정도가 마땅’ 최저임금 사회적 수용케 하고
기업은 불평 대신 운영방안 더 고민해야

비정규직 사유제한·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화
노동자 스스로 ‘노동의 질’ 개선 방안 제안케

사회적 대화에선 기업·산별노조 함께 움직여야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 참석차 방한한 노동경제학의 대가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석좌교수(오른쪽부터)와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이 비정규직, 최저임금, 사회적 대화 등을 주제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 참석차 방한한 노동경제학의 대가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석좌교수(오른쪽부터)와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이 비정규직, 최저임금, 사회적 대화 등을 주제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 단계적 실현 등을 약속하고 있지만, 대다수 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다. 사회의 근간인 노동, 특히 그 노동의 다수인 불안정·저임금 노동은 벼랑 끝에 몰려있는데 문제를 풀 노동의 사회적 세 주체, 노동조합·경영진·정부의 거리는 아직은 멀다. 이 문제를 두고,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 참석차 방한한 노동경제학의 대가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석좌교수와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머리를 맞댔다. 대담은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으며, 이정우 명예교수는 대담의 진행을 함께 맡았다.

최저임금

이정우(이하 이) 한국의 최저임금은 국제적으로도 낮은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현재 시간당 6달러 수준(2017년 6470원)인 최저임금을 3년 안에 9달러(1만원) 정도로 올리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16.4% 인상해(2018년 7530원),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이 올렸다. 그런데 재계에서 반대가 많고, 특히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 자영업 등에서 불평이 많다. 해고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는 영세사업장 등의 어려움을 도와주기 위해 고용안정기금으로 3조원 정도를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이게 논란을 빚으면서 야당과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리처드 프리먼(이하 프리먼) 기업들이 최저임금을 우려하는 건 현실에 기반한 게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다.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방법을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품는 두려움이다. 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비용 때문에 고용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한 건 브라질인데, 그 비결은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최저임금으로 이 정도를 받는 건 마땅하며,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가 혹사당하는 것이라는 정부의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상당한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이걸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저임금은 국가경제에서 노동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될 정도라는 생각이 확산되는 거다. 이렇게 되면 재계는 불평하는 대신, 최저임금을 주면서 어떻게 기업을 운영하는 게 좋을지 생각하게 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최저임금을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은 알려져있지 않아, 내가 그걸 연구할 프로젝트를 미국에서 시작했다.

문성현(이하 문) 한국에선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최저임금을 올리려는 게 옳은지, 지속가능한지가 정치적 쟁점이다. 브라질과 남아공, 미국은 어떤가.

프리먼 국가가 재정으로 최저임금을 보조하는 사례는 못들어봤다. 재정적인 지원보다는 중소기업의 경영효율성을 제고할 만한 지원이나 조언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미국에선 임금인상 때 소농이나 중소기업에서 지불할 여력이 없다고 난색을 표하는 경우 이들의 협력업체인 대기업에 매입단가를 높여달라는 협상을 한 적이 있다. 캠벨수프한테 농민들의 옥수수 매입단가를 높이라는 협상을 진행했는데, 숙련도가 낮은 농민의 급여를 올리는 사회적 대화로 의미가 있었다. 소농의 이익이 적어 어렵다는 걸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소비자들이 낸 수프 가격 인상분이 궁극적으로 원료공급자인 소농의 손에 들어가도록 한 거다.

최저임금이라고 하면 보통 ‘얼마’를 줘야 된다는 걸로 이해하지만, 그보다는 중소·영세기업이 어떻게 그 ‘얼마’를 줄 수 있도록 만드느냐가 중요하므로 정부와 대기업, 사회 각 부문이 중소·영세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그런 여건을 만들자는 이야기인 것 같다.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을 16.4% 올린 것도, 우선 정부가 이렇게 할 테니 대기업과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함께 풀자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새 정부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인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첫발로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한 게 상징적인 의미다. 이 문제는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자리

문 대통령이 취임 뒤 첫 조치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도 했다. 청년들의 구직난이 굉장히 심각해 일자리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일자리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경험들은 어떤가.

프리먼 일자리 만들기 프로그램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추진하지만 성공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다만 청년 고용에 초점을 맞추면 여러 방법이 있다. 미국에서는 인턴십 제도를 많이 활용하는데, 일부 대학은 4년제를 5년제로 늘려 1년 기간의 인턴십을 아예 정규과정에 넣고 이를 신입생 모집 때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승인을 받아 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가는데, 이 과정을 거친 많은 학생들이 졸업 뒤 그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확인됐다. 학생은 자기한테 맞는 일이 어떤 건지 경험할 수 있는데다 많진 않지만 일정한 급여를 받고, 기업은 앞으로 직원이 될 만한 청년을 실제로 만나볼 수 있어 만족스러워한다. 이것이 일자리 창출은 아니지만 청년을 일자리로 연결해준다는 점에, 더 빨리 고용될 가능성을 만들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고용을 제일 많이 하는, 즉 ’최대 사용자’인 정부가 앞장서서 일자리를 만들고 상시지속적인 일은 우선적으로 정규직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프리먼 정부가 최대 사용자인 건 부처와 산하기관이 많기 때문인데, 세계적으로 볼 때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미국은 정규직 고용이 원칙으로, 하위급 공무원은 임금·복지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하고 실제 공무원이 됨으로써 빈곤에서 탈출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컴퓨터 전문가처럼 고숙련 노동자는 정부가 시장 수준의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어 외주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청소, 경비 등 단순하지만 상시지속적으로 일해야 하는 분야가 외주화돼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정부는 이 분야를 정규직으로 바꾸려는 중이다.

프리먼 비정규직 고용이 늘어나는 건 세계적인 현상으로 미국도 증가 추세다. 미국은 공공부문 노조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고, 이들은 정규직 고용을 강하게 요구한다. 만약 지방정부가 청소 부문에 정규직 공무원보다 용역업체를 쓰는 게 낫다는 주장이 나오면, 이들은 용역업체와 어떻게 경쟁할지 지방정부 담당자와 함께 계획을 세운다. 자신들의 경쟁력이 더 나으므로 외주를 주지 않는 게 지방정부에 더 이득이라는 보여줘 외주화를 막는 거다. 나는 한국 공공부문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얼마나 되는지, 노조의 역할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이들을 정규직화할 땐 어떤 방식으로 해야 더 잘 운영할 수 있는지 정부와 여러 가지 논의를 하는 게 필요하다.

한국은 정부 통계로는 노동자의 3분의1 정도, 민간 노동연구소 추계로는 45%가 비정규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건 민간부문은 물론 공공부문까지도 비정규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첫 조치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했고, 현재 후속작업이 진행 중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 굉장히 복잡하고, 비정규직의 종류도 많고, 문제 하나하나를 해결할 통일된 논리도 없는 것 같다. 어쨌든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그 다음에 민간부문에서 정규직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 같다.

프리먼 직업별로 분류해 정규직화될 비정규직과 이들을 감독할 공무원들이 별도로 만나, 일의 본질과 정규직화 이후 어떤 중요한 변화가 있을지 등을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자기 일을 개선할 만한 제안을 직접 해보라고 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규직 공무원이 되면 따라올 혜택들과 함께, 직장을 더 좋게 만들고 자신이 더 큰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함께 얘기해보는 거다.

미국 민간기업은 종업원지주제나 이익공유제 등을 통해 회사의 경영능력을 어떻게 높일지 노동자가 방법을 제안하고 그에 따른 이득을 공유한다. 미국 공공부문에선 성과 분배 프로그램을 많이 이용한다. 가령 어떤 공무원이 비용 절감 방안을 제안해 실행했는데 실제로 성과를 거뒀다면, 절감 비용 일부를 그 사람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이에 착안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기회가 생기면 참여와 생산성은 높이고 비용은 낮추는 실행계획을 만들게 해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거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외환위기 때 노동비용을 줄이는 방안으로 외주화하고 정규직을 덜 고용하는 것으로 고용 형태가 변했다. 앞서 1987년 이후 주요 기업과 공공부문에 자리 잡은 강력한 노동조합이 이 고용 형태의 변화와 상호작용해 비정규직이 지나치게 많이 늘어났다. 비정규직 문제는 양적으로도, 처우 부분에서도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50% 정도밖에 못 받는 등 처우도 불안하다. 더 큰 문제는 정규직은 우월적 지위에, 비정규직은 열등한 지위에 있는 신분적 차이다. 이건 청년실업과도 연결된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으로 하자는 방향은 분명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만만치 않다. 조직화된 정규직의 벽을 넘기 어렵고, 정규직화에 소요되는 많은 재정은 또 어떻게 할 거냐의 문제도 있다. 장기적으로 분명한 확신과 낙관을 가지되, 보수와 진보 관계없이 현실에 근거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프리먼 미국에선 흑인과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한 차별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가 성공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 때 본격적으로 시행됐는데, 더는 국가가 이렇게 운영돼선 안된다는 걸 기업들이 이해하고,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인식하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부가 관련 통계를 제시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만약 내가 어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인데 우리 회사에서 여성과 흑인은 승진이 안 된다는 게 통계로 알려지면 사회적으로 부끄러울 거다. 강경한 조치도 취할 수 있다. 차별시정조치는 정부 조달계약에만 해당되는데, 미국에선 굉장히 많은 기업들이 정부 조달에 관련돼있어 이 제도가 힘을 받을 수 있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이 늘어나면 정부 계약에서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은 미국 어느 주요기업에서도 차별시정조치 담당 임원이 없는 경우가 없다. 이들은 회사 안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약자 집단의 지위 개선방안을 고민하는데 이 고민 자체가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 안에 포함돼있다.

차별시정조치가 아주 좋은 제도라고 생각해 한국에 도입한 적이 있다. 2006년 내가 아이디어를 내 ‘적극적 고용개선 조처’를 시행했는데, 이명박 정부로 바뀌자마자 대기업들이 그게 불필요한 규제라며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대기업 회장들이 1965년에 존슨 대통령한테 요구해서 차별시정조치가 시작됐는데, 우리는 거꾸로 정부가 하겠다고 하는데 대기업이 반대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의 심각한 여성·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는 데는 이게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다. 과격한 조처도 아니고, 기업 사정에 따라 합리적이고 온건하게 적용할 수 있으므로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이걸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차별시정조치는 정말 필요하다. 비용절감과 노조 회피를 위한 비정규직화는 시대에 맞지 않다. 기업하는 분들이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노동의 질을 높여가야 한다.

프리먼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회사들을 독려하는 방식 등으로, 모든 사회가 전향적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 미국 사회에서 놀라운 일은, 트럼프 정부가 악마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소수자들, 이를테면 트랜스젠더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런 식의 접근이 사회의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 차별시정조치는 정부조달이라는 무기를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기업엔 유용한 방식이지만, 방대한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중소기업은 정부조달을 별로 하지 않으므로 영향권 밖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정규직 사유제한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두 가지 수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의 양대 노총은 비정규직 사유제한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재계는 늘 반대한다. 하지만 역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했던 스페인을 보면 사유제한을 통해 비정규직이 현저히 줄었다. 또, 기업은 비용절감 때문에 비정규직을 남용하니 그 매력을 줄일 필요가 있고 그와 동시에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과 비슷하게 책정해야 한다. 즉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프리먼 한국은 지금 최저임금제 시행과 관련해 중소기업에 집중하고 있다. 영세기업에 종사하는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더 어려운 과제다. 일단은 종업원이 5명 혹은 10명 정도 있는 사업장의 현재 비정규직 임금 수준이 정규직의 50% 정도라면, 2년 뒤에는 60%로, 그리고 일정한 기간 뒤에는 70% 정도로 만들자는 정책 목표를 모두가 함께 만들 수 있을 거다. 노동자들도 이런 변화가 앞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식의 접근이 사람들의 행동에 녹아들어가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임금 수준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더 쉽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정규직이 받는 임금 외의 혜택들도 점차 받게 하면서,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나는 1980년대에 스페인 임금소득위원회에서 활동했는데, 그때는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의 권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의 스페인은 더 성공적인 것 같다.

사회적 대화

전교조는 민주적 조직인데도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정규직의 협조 없이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정부-대기업-중소기업, 그리고 노조 안에서도 정규직, 비정규직 등 여러 단체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다. 비정규직이 정말 비용절감인가 의문이 든다.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하지 않고, 기술 습득이나 숙련도 안 되고, 인센티브도 없으니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는 측면도 있다. 효율에서도 문제가 된다. 이 문제 해결이 국민경제 성장과 공평을 위해 대단히,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얘기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한 단계, 더는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왔다. 이걸 풀 수 있는 게 사회적 대화가 아닌가. 그래서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난 20년간 여러 차례 노력했음에도 성공을 못하고 있는데 도움이 될 만한 외국 사례가 있나.

프리먼 내가 알기로는 가장 성공적인 모델은 독일이다. 독일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는 분석할 가치가 있다. 독일에서는 정부의 압력을 오래 받은 기업들이 결국 사회적 대화에 나섰다. 독일의 기업들은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정부를 사회적인 파트너로서 배제하고 노조에서 대화 상대를 찾았다. 그러다보니 노조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어쩌면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독일에서 대기업 노조 대표들이 회사 쪽과 공모를 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노조 간부들과 얘기했는데, 나 역시 물었었다. 왜 노조원의 수를 늘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느냐? 이런 문제에서 노조가 반대하면 일을 풀기가 매우 어렵다(한숨). 어떻게 노조의 태도를 바꿀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해관계로 외부자들을 배제하고, 내부자들이 혜택을 나누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제는 이런 상황에서 매우 강력한 정책이 될 수도 있다. 고용주가 돈을 더 내면, 노동자는 더 오래 머물 가능성이 있고, 노동자가 더 머물게 되면 고용주가 노동자를 더 교육시킬 동기가 생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저임금제가 비정규직을 둘러싼 악순환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벽을 허무는 문제만이 아니라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문제다. 벽과 계단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 수백대 1의 경쟁을 뚫은 정규직의 문제제기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로 이해해야 되지 틀렸다고 하면 안된다. 있는 문제들을 놓고, 단계적으로, 현실적으로 가야 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최저임금도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종합하면서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프리먼 교수님 말씀대로 모든 분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숙의민주주의를 거치는 게 저희들의 과제가 아닌가 한다.

독일, 스웨덴은 노사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고 정부는 여기에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에는 네덜란드 모델이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네덜란드는 노사정 3자 대화체제를 가동한 결과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네덜란드의 기적을 이뤘다.

프리먼 네덜란드 모델에서는 사용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가 협약을 맺으면 그 효과가 해당 산업의 모든 업체에 적용이 됐다. 네덜란드의 모델은 한국과 완전히 다르다. 사용자 단체는 사용자들과 협상을 벌이고, 정부는 별도의 기구를 둬 이를 통해 그 협약을 연장하고 관리한다. 이런 방식이 잘 작동했다. 네덜란드에서 보수 정부가 들어섰을 때, 이런 모델 자체를 제거하려고 했다. 당시 내가 네덜란드 노조 지도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노조에서는 모든 노동자들을 동원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제조업 중심의 핵심적인 노조원들에게만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노조는 강력하지만 노조를 벗어난 외부에서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었다. 결국 어떤 이유로든 네덜란드 보수 정부는 네덜란드 모델을 해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회적 대화에서 노조의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한국은 기업별 노조인데 이게 사회적 대화에 적합한가. 30년 지나다보니 임금격차 등 기업별 노조가 일정한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기업별 울타리를 뛰어넘는 노조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이런 문제들에 책임있는 접근이 가능할까. 합의를 하더라도 지속가능한 합의가 되겠나 우려가 많다.

프리먼 미국의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의 경험에서 보듯이, 그들은 스스로를 위협하는 경쟁 노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다가 경쟁 노조가 등장하자 비로소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유럽 모델, 그러니까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모델이 성공한 데는 강력한 노조가 있었지만, 핵심은 산별 단위의 협상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협상이 전국 단위의 협상이라고 불렸지만, 내용은 산업별 협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 노조와 산업별 노조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개별 노조는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함께 움직여야 한다.

정리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여인형, 국회 의결 전 ‘우원식·이재명·한동훈’ 우선 체포 지시” 1.

[단독] “여인형, 국회 의결 전 ‘우원식·이재명·한동훈’ 우선 체포 지시”

윤석열 가짜 출근, 경찰이 망봐줬다…은어는 “위장제대” 2.

윤석열 가짜 출근, 경찰이 망봐줬다…은어는 “위장제대”

수갑 찬 조지호 경찰청장…영장심사서 묵묵부답 3.

수갑 찬 조지호 경찰청장…영장심사서 묵묵부답

“윤석열이 건넨 ‘접수 대상 언론’에, MBC 말고 더 있어” 4.

“윤석열이 건넨 ‘접수 대상 언론’에, MBC 말고 더 있어”

“내란죄? 거짓 선동”…윤석열 담화 따라 외친 ‘보수 집회’ 5.

“내란죄? 거짓 선동”…윤석열 담화 따라 외친 ‘보수 집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