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청와대 상납’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로 밝혀질 돈의 사용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엔 기본 예산뿐 아니라 별도의 특수활동비가 매년 200억원 가깝게 책정된다. 그럼에도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끌어다 쓴 건 은밀한 용도를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쓸 데가 일일이 다 정해져 있어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은 돈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외교·안보·의전을 비롯한 각종 행사 등에 격려 차원으로 쓰이는 일이 많아 다른 용도로 이를 끌어다 쓰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우선적으로는 박 전 대통령이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등을 연결고리로 한 사적인 조언그룹을 관리하는 데 국정원 돈을 썼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식 계통이 아닌 ‘비선 라인’을 챙기는 용도였으리라는 것이다.
‘비선 진료’ 등 박 전 대통령 개인의 극히 사적인 용도로 국정원 돈이 쓰였을 가능성도 크다. 최순실씨가 챙겨준다고 해도 당장 옆의 비서관을 시켜 꺼내 쓸 수 있는 별도의 주머니가 필요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도 2일 <티비에스>(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박 전 대통령) 시술비에도 썼고 그러지 않았을까. 그걸 아마 예산으로 쓰기는 항목상 어려울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으로부터 40억원대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체포된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왼쪽 사진)과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각각 출석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여권에 대한 청와대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서도 대통령의 ‘비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당 내 ‘친박’ 그룹의 영향력 확대와 그들에 대한 청와대의 ‘입김’ 유지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을 거란 논리다. 실제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가 정보기관 돈을 끌어다 정치권에 뿌리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졌다.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 일부에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국정원 돈이 어떤 식으로든 청와대에 흘러갔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정원의 청와대 상납이 관행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국정원 돈 끌어쓰기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는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때 안 받았다”고 부인했다. 그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서 ‘어떠한 경우에도 산하 연관기관에서 일체 돈 받지 마라’고 했다”고 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특활비의 청와대 지원이 되살아났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김당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노무현 정부 때) 김만복 원장이 기조실장 시절부터 오래된 관행이라며 청와대 지원을 부활해 정례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참여정부 때는 안 받기로 하고 일체 받지 않았다. 받았으면 내가 모를 리 없다. 정권이 바뀌니까 금세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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