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3년 전께 일이다. ㄱ검사와 법조 출입 기자 몇몇이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 위축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ㄱ검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한민국에 자유는 차고 넘친다”고 단언했다. 반론들이 거셌지만, 이 검사는 되레 ‘공부 좀 하라’는 식으로 반격했다. 그러면서 권해 준 책이 자유민주주의를 인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으로 선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책 <역사의 종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대화를 나눴던 당시는 박근혜 정부가 작성·실행한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현직 검사 3인방으로 인해 검찰 내부는 패닉에 빠졌다. 서울지역 한 부장검사는 이 중 한 명을 가리켜 “문제가 될 거 같은 기미만 보여도 만원짜리 밥도 안 먹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사람인데,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 말했다. 다른 검사들도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들이 정말 사실이냐”, “(해당 검사들이)국정원에 이용을 당한 것 같다”,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은 일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나’와 같은 일을하는 검사를 이해하는 ‘동정론’, 나아가 검사의 일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종의 ‘검사 무오류’론의 연장선에 나온 발언들이다.
사실 많은 검사들이 거짓말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온갖 진실과 거짓말이 혼재하는 신문 과정에서 오롯이 진실만을 찾아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그런 검사들이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국정원 직원들에게 ‘거짓 진술 시나리오’를 써주고, 가짜 사무실을 만들어 ‘리허설’까지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 “검찰 수사의 불법성을 강조하라”는 지침을 만들었다.
어쩌면 국정원을 지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대한 흠집 내기를 막아내는 것이, 정권을 사수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일이라는 확신했을지 모른다. 그런 확신이 눈앞의 진실을 외면하게 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을 스스럼없이 하게 했는지 모른다.
검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최근 만난 검찰 한 고위관계자는 공안검사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공안, 안보, 자유민주주의, 이런 게 중요한 걸 모르는 사람도 있느냐. 자신들이 생각하는 공안, 안보, 자유민주주의만 맞다며 생각이 꽉 막혀 있다. 이 사람의 뇌가 말랑말랑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공안’(공공의 안녕)이라는 문자 자체는 굉장히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런 업무를 왜 전문화된 특정 검사 집단이 도맡아 하는지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안’이라는 말에 밴 부정적인 느낌을 공안검사들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ㄱ검사는 지금 동료 검사들에 의해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여론 조작이 ‘주업무’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국정원이 벌여왔던 각종 공작의 실체는 온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공작들이 국민들의 자유로워야 할 판단을 왜곡되도록 만들었고, 그로 인해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가 조금씩 무너져 버리고 있는 돌이키기 힘든 결과가 초래됐다.
정의와 인권을 바로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는(<검사선서>의 일부분) 검사에서 수사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지금도 ㄱ검사는 그때의 확신을 고수하고 있을까.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2013년 검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를 방해하는데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장호중 부산지검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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