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알려진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31일 오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상납받는 등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되어 검찰에 출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안봉근(51)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51) 전 총무비서관의 체포로 신호탄을 쏜 검찰의 이번 수사는 ‘국가정보원의 청와대 상납’이 핵심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과거사 청산’과는 차원이 다른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두 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점에 비춰 사실상 ‘대통령이 주도한 청와대의 세금 횡령 사건’으로 번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31일 검찰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국정원과 청와대가 왜 저렇게까지 서로 간에 밀착해서 범죄 행위를 벌였는지 의문이었는데, 예상대로 돈으로 얽혀 있었다”는 표현을 썼다. 그동안 보수단체 관제데모 지원 등 ‘화이트리스트’ 수사 등을 통해 청와대와 국정원의 비정상적인 유착을 확인했는데, 역시나 그 이면에는 윗선 ‘상납’과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유지되는 ‘검은 커넥션’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이 ‘청와대와 국정원’이라는 최고 권력기관 사이에 벌어진 일이지만, 실제 내용은 전형적인 뇌물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검찰이 이날 자택을 압수수색한 남재준(73)·이병기(70)·이병호(77) 전 국정원장은 정보수집이나 수사 등 정해진 명목으로 써야 할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돈을 받은 이들은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과 조윤선·현기환 전 정무수석 등으로, 국정원을 지휘·감독하는 상급기관으로서 지위가 뚜렷하다. 당시 두 비서관은 모든 국민이 아는 대통령의 실세 측근이었고, 두 정무수석 역시 국정원의 보고서를 직접 받는 위치였다. 공금을 빼돌려 편의를 봐주는 감독기관에 건네는 전형적인 뇌물 구조인 셈이다.
특히 검찰 조사 결과, 국정원은 돈을 상납하면서 계좌 등 합법적인 창구 대신 흔적이 남지 않는 5만원권 현금을 이용했다.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과 안·이 전 비서관은 각각 차량을 이용해 매달 약속한 장소에서 은밀히 만나 직접 1억원짜리 현금 다발을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몰래 현금 거래를 한 일 자체가 스스로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정황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두 전직 비서관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의 뇌물수수죄를, 남재준 전 원장 등 공여자들에게는 뇌물공여죄 외에 특가법의 국고손실죄를 적용할 방침이다. 국고손실죄는 횡령죄와 유사하지만 형량은 더 무겁다. 한 부장검사는 “개인 돈이 아닌 회삿돈이나 세금을 유용해 뇌물을 갖다 바쳤다면 더 엄하게 처벌될 수 있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기 돈이 아닌 삼성전자 회삿돈을 최순실씨 쪽에 제공해 더 세게 처벌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이번 뇌물의 최종 종착지와 사용처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해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고위 관계자들이 줄줄이 처벌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박근혜 정권의 또다른 불법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이 이들의 상납을 지시하거나 묵인·방조했을 경우 지금 진행 중인 재판에 죄목이 추가돼 가중처벌될 수도 있다.
이날 검찰은 체포된 두 전 비서관 등을 상대로 국정원의 상납을 받은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또 조만간 남재준 등 세 명의 전직 국정원장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계획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알려진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 31일 오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상납받는 등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되어 검찰에 출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