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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민의 칼’ 될 수 있을까, 촛불 1년 기로에 선 검찰

등록 2017-10-31 11:14수정 2017-11-02 10:20

[기자가 현장에서 본 촛불 1년] ① 검찰

“2년만 지나면 삐걱” vs “국민 눈높이 못 맞추면 나락” 두 기류
개혁 바라던 그 검사는 지금 ‘윗선’의 압력에서 좀 자유로울까

“기자는 살면서 죄 안 짓냐”며 박근혜 수사 머뭇대던 검찰
인사 물갈이 뒤 적폐청산 수사…첫 단추는 비교적 잘 끼워

공수처 신설·수사권 조정 등 문제 부풀리는 검사들 여전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지 ‘쇄신파-저항파’ 신경전도 치열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주최 촛불 1주년 기념대회가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은 계속된다’를 주제로 열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주최 촛불 1주년 기념대회가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은 계속된다’를 주제로 열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꼭 1년 전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촛불도 막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매일 관련 의혹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었지만, 내가 취재를 맡고 있던 검찰은 여전히 ‘딴 세상’이었다. 당시 한 검찰 간부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는 “대통령을 조만간 조사할 수도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대통령을 어떻게 조사해? 그럼 검찰이 죽는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뭘 모른다는 듯 “그건 오버다. 검토한 적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검찰 내부적으로도 박 대통령 조사는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또 다른 검찰 간부는 “대통령에게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내 질문에 “서 기자는 살면서 죄지은 것 없느냐”는, 날카로우면서도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질문 자체가 기분 나쁘다는 투였다.

그럼에도 ‘촛불’은 더 거세게 타올랐고, 이어지는 탄핵심판과 대통령선거 등으로 1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는 여전히 검찰을 출입하고 있지만, 지금 내가 출입처로부터 받는 문자메시지의 ‘내용’과 ‘품질’은 1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 30일 오전 중에 내가 받은 문자만 해도, ‘장호중 검사장 조사 뒤 귀가’, ‘문화방송 김재철 전 사장 주거지 압수수색’, ‘박민권 1차관 검찰청 도착’, ‘이명박 전 대통령 고발한 옵셔널캐피탈 대표 조사 중’, ‘신동빈 회장 징역 10년 및 벌금 1천억원 구형’ 등 숨이 가쁠 정도다.

‘박근혜 국정원’의 첫 감찰실장이었던 현직 검사장이 조사를 받고, 지난 9년 보수정부의 철옹성 같았던 공영방송에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 ‘다스는 누구의 것이냐’는 국민의 질문에, 이제 검찰은 ‘당신은 살면서 죄지은 게 없냐’고 되묻지 않는다. ‘피고인’ 박근혜와 최순실, 이재용의 재판에서 검찰은 매우 단호하다. 사회 각 분야가 모두 그렇겠지만, 검찰의 이런 작은 변화는 한겨울 추위에도 버텨줬던 ‘촛불’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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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직전, 검찰은 머뭇거리기만

정확히 1년 전 국정농단과 관련한 검찰 내부 분위기를 보여주는 <한겨레> 기사 제목들을 추려보면 대체로 이렇다. ‘최순실 수사는 미적미적’(2016년 10월20일 5면), ‘미르·K재단 본격 수사한다면서 압수수색 미적’(2016년 10월25일 8면), ‘검찰, 최순실 뇌물죄 빼고 봐주기 영장’(2016년 11월3일 1면)…. 최씨 소유 태블릿 피시가 발견되고,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녹취록까지 터져 나왔지만, 검찰은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해 11월6일 검찰은 압수한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2대에 대통령과 통화한 내용이 녹음돼 있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기자 티타임의 한 대목이다.

-(대통령의 통화 내용은) 유의미한 건가요?

“유의미한 건 별로 없습니다.”

-별로 없다는 건, 있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통화 내용은 말할 수 없는데, 취지는 대통령이 업무지시를 하면 ‘예, 알겠습니다’ 그런 내용이니까 이 사건과 (관련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나중에 알려진 것이긴 하지만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을 조사한 내용은 심각했다.

-피의자는 2013년 10월27일 최씨와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 일정을 협의한 직후 대통령과 통화하며 ‘선생님하고 좀 상의를 했는데요’라고 하는데 여기서 ‘선생님’은 최씨가 맞나?

“네, 맞습니다.”

-당시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보면 ‘총리 담화문 관련 최씨와 상의한 결과 자료에 적절치 않은 부분이 있어 수정안을 만들어 다시 보고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어떤가?

“네, 맞습니다.”

당시 검찰은 이미 최씨의 심각한 국정개입을 확인한 뒤였는데도, 정작 기자들에게 엉뚱한 소리를 했고, 수사는 이후로도 한참을 머뭇거렸다. 왜 그랬을까?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내 결론은 결국 ‘인사권’ 때문인 듯했다. 앞서 소개했던 검찰 간부가 “대통령 조사한다고 하면 검찰이 죽는다”고 말한 건, 사실 검찰 전체가 아닌 그와 그의 그룹이 받을 인사 불이익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나 세월호 수사 등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검사들이 어떤 불이익을 받고 떠밀려났는지에 대해 그동안 나도 수없이 기사를 썼다. 하지만 검찰 인사를 쥐고 노골적으로 흔들어댄 권력 앞에서, 검사들은 대체로 무력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검사들의 문화 자체도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진경준 전 검사장의 뇌물수수 사건부터 김형준 부장검사의 스폰서 사건 등 검찰 내부의 문제가 연이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검찰은 침묵했다.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도 아무런 자성의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입바른 소릴 하던 젊은 검사들은 종적을 감췄다. 한 중견 간부급 검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위에서 내리라고 하고 대검에서 전화가 와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내리라고 했다”며 “그러다 보니 검사들이 길들여진 것 같다. 검사한테 수사하지 말라고 하면 예전엔 게시판에 불나고 연판장도 돌리고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런 동력이 사라졌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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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사는 왜 ‘촛불집회’에 나갔을까

촛불집회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커지면서, 당시 검찰 내부에서도 상당한 동요가 있었다. 촛불과 동시에 한창 드러나고 있던 ‘국정농단’의 실상은 참혹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은 검찰이 봐도 한심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사석에서 만난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얼마 전 촛불집회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 분위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속속 드러나는 국정농단의 실체에 대해 무력감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15년차의 한 검사는 이런 말도 했다. “와이프가 ‘니네 검찰은 왜 그러냐’는 식의 핀잔을 주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바깥에서 친구나 선후배를 봐도 우리가 어느 순간 공적이 돼 있는 것 같은 위기감이 들더라. 텔레비전으로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몇 주째 마주하다 보니, 저 에너지가 언젠가 우리를 향해 오겠구나, 피하기 어렵겠구나….”

당시 최씨 국정농단 사태를 한참 수사하던 수사팀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수사를 방해하는 ‘윗선’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검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비교적 나와 말이 잘 통했던 한 검사는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출연과 관련한 기업 모금 등 어느 하나 박근혜 대통령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됐다. 주말에 나도 마음은 광화문에 가 있었다”고 했다. 뇌물죄는 어렵다던 검찰은 대통령이 탄핵된 뒤인 2017년 4월17일 ‘민간인 박근혜’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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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 검찰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권력의 인사 칼날 앞에 대다수 검사가 침묵을 택했던 지난 시절에도 소수의 예외는 있었다. 2013년 윤석열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팀장과 박형철 공공형사수사부장이 윗선의 반대에도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는 이유 등으로 징계를 받자 당시 김선규 검사는 이프로스에 이런 글을 올렸다.

“수사팀의 압수수색·체포영장 청구시, 보고는 했으되 결재는 받지 않은 행위가 과연 다른 사람들의 눈치나 보며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한 것보다 중징계 사유가 되는지 검사로서 의문이다. 수사팀에 대한 정직, 감봉 등 징계 건의를 철회하라.”

나 역시 취재 과정에서 때때로 이런 검사들을 만났다. 박근혜 정권이 아직 건재했던 지난해 초 “지금 제 살을 도려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법무·검찰이라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적어도 내가 보기엔 어떠한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옆길로 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도 있었다. 이제 이런 이들이 ‘윗선’의 압력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겨레>가 촛불 1년을 맞아 30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현재 진행 중인 검찰의 ‘적폐 수사’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로서도 일단 첫 단추는 무난하게 끼운 셈이다. 지난 1년, 나는 촛불 시민들이 검찰에 ‘진보’를 기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정원 수사를 이끄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진보’라고 말하는 이는 검찰 안팎에 아무도 없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눈앞의 범죄에 원칙대로 맞서면 그걸로 검찰은 충분히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

현 검찰 내부의 분위기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두 기류로 요약할 수 있다.

“정권 바뀌고 지금 요직을 차지한 이들이 점령군처럼 행세하는 것 아닌가. 이들이 과거 정부와 무슨 차이가 있나. 2년만 지나면 삐걱거릴 수 있다.”

“사람 몇 명, 제도 몇 개 바꾼다고 확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끊임없이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검찰은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검찰이 어느 쪽으로 가게 될지는, 결국 1년 전처럼 ‘깨어 있는 시민’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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