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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국 ‘촛불 민주주의’ 깊은 공감…이젠 체제 바꿔야”

등록 2017-10-24 04:59수정 2017-10-24 07:02

아이슬란드 해적당 대표 비르기타 욘스도티르
아이슬란드 해적당 대표이자 시인인 비르기타 욘스도티르.
아이슬란드 해적당 대표이자 시인인 비르기타 욘스도티르.

2008년 아이슬란드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을 때 수도 레이캬비크에선 시민들이 냄비와 솥을 들고 거리로 몰려나와 은행 채무를 세금으로 갚겠다는 정부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프라이팬 혁명’이라고 불리는 이 시위에서 “누구보다도 큰 프라이팬을 두드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는 얘기를 듣는 시인 비르기타 욘스도티르(50·사진)는 이를 계기로 시민들을 모아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 시인, 해커, 회사원, 어부, 학생들이 모여 만든 해적당은 2013년 아이슬란드 총선에서 3석을 차지했고, 2016년엔 10석을 확보해 좌파 녹색당과 함께 공동 원내 2당이 됐다.

23~24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콘퍼런스 ‘일상의 민주주의와 사회혁신’에서 기조연설을 맡아 한국을 찾은 그를 23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만나 해적당의 성장과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들었다.

2008년 국가부도때 거리 나선 시인
“프라이팬 두드리며 이뤄낸 혁명”
2012년 ‘해적당’…지난해 원내2당

서울 국제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
“정치 바꾸고 싶으면 ‘해커’ 되라

“아이슬란드뿐 아니다. 22일 열린 체코슬로바키아 총선에서 해적당이 10% 표를 얻고 22개 의석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든 운동은 자신의 시간을 갖는데 지금은 젊은이들이 정치적 운동을 벌여나갈 시기가 무르익은 것 같다. 해적당은 새로운 종류의 정치다. 우리는 우파나 좌파가 아니라 시스템을 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욘스도티르가 소개하는 해적당의 정책은 시민들을 입법 과정에 직접 참여시켜 생활에 관련된 문제들을 바꿔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 해적당의 기본정책인 디지털 표현의 자유와 정보공유뿐 아니라 기본 소득 개선이나 마약 합법화까지 고루 의제로 삼아 디지털에서 토론하고 다수 의견을 만들어왔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시민의 권리”, “알코올이든 헤로인이든 중독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경우”라는 것이 아이슬란드 시민들이 온라인 토론 플랫폼과 투표를 통해 모아낸 의견이다.

“해커는 시스템에 들어가 시스템을 분석하고 그 핵심을 대중들에게 누설한다. 나는 의회에 잠입해 오류를 폭로하겠다”며 2010년 시민운동당으로 당선, 정보공개와 표현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킨 욘스도티르는 2012년 해적당을 창당하면서 활동의 폭을 더욱 넓혔다.

그는 지난해엔 촛불시위를 지켜보며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동질감과 기대가 커졌다고 했다. “매우 주의 깊게 현지 뉴스를 보며 관심을 가져왔다. 마침내 시민이 승리하고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아주 기뻤다. 1945년 한국과 아이슬란드는 비슷한 시기 독립을 쟁취하고 이제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권교체를 요구하고 이뤄냈다. 시민들이 연대해서 정직하고 청렴한 정치를 요구한 점, 그리고 그런 변화가 가능한 사회라는 점 등이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욘스도티르가 보기에 그다음 단계는 정치 체제를 바꾸고 직접민주주의로 다가가는 일이다. “아이슬란드 해적당은 선거 시기가 아니더라도 국민의 10%가 원하면 국민투표를 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아무 법 조항 5개만 가지고 누가 그 법을 썼는지 살펴보라. 그 법을 쓴 사람은 의회도 아니고 행정부도 아니고 로펌의 똑똑한 변호사들일 것이다. 로펌과 기업의 유착관계를 짐작할 수 있지만 아무도 쉽사리 그것을 밝혀낼 순 없을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복잡하고 관료적인 법치주의가 국민들을 ‘일상의 정치’에서 멀어지게 했다”고 비판했다. “작가나 시인들이 법을 쓰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라며 웃는 그 자신도 시를 써온 시인이다.

아이슬란드는 뱌르드니 베네딕트손 총리가 아버지의 스캔들로 사임, 28일 조기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욘스도티르는 “이번 총선엔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에도 당선되면 3번 연속이기 때문에 정치꾼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과 어긋난다. 실정법에 그런 규제는 없지만 난 내 마음의 법에 따른다”고 했다. “아이슬란드에서 해적당이 10석을 얻었을 땐 너무나 기뻤다. 그러나 식물들이 그렇듯 당도 너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좋지는 않다”는 그는 다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평당원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내년엔 2007년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 ‘아이슬란드 국민가수’ 베르그소라 아우르드나도티르가 살아 있었다면 70살이 되었을 해에 맞춰 그는 어머니의 평전을 쓸 계획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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