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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다 필요없고, 집사만 있음 돼!

등록 2017-10-13 20:03수정 2017-10-14 18:49

고등어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 고등어 장난감을 씹고 뜯고 맛보는 중인 라미.
고등어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 고등어 장난감을 씹고 뜯고 맛보는 중인 라미.
[토요판]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11. 최고의 장난감은?
고양이 장난감은 사실 고양이보다 집사를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고양이를 혼자 두고 하루 종일 집 밖에 있어야 하는 집사는 그나마 장난감이라도 두고 나가야 미안함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사들은 장난감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많은 엄마 아빠들이 그렇듯이.

라미의 첫 장난감은 깃털이었다. 10마리 넘는 고양이를 키우면서 아픈 길냥이들 치료도 하는 울산의 어느 노련한 집사가 냥이들 치료비 마련을 위해 직접 만든 깃털이었다. 낚싯대처럼 나무 막대기에 줄을 묶고 그 끝에 깃털을 달아 이리저리 흔들면, 라미는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라미만 그런 건 아니었다. 그 집사의 인스타그램에 가면 ‘간증 영상’이 여럿이었다. 깃털 장난감은 1년이 다 된 지금도 라미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중 하나다.

사실 깃털이나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오뎅 꼬치’ 등은 장난감이라기보다 ‘놀이’에 가깝다. 집사가 없으면 별 소용이 없는 것들이다. 만약 그냥 깃털을 던져놓으면 물어뜯거나 삼켜버린다. 한눈을 판 사이에 라미 역시 깃털을 씹고 뜯고 맛보고 삼켜버려서 12시간쯤 뒤에 한바탕 구토를 한 적이 있다.

집사에게 절실한 장난감은 집사가 없을 때 고양이가 관심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것들이다. 사실 함께 있으면 굳이 장난감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 집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고 누워 있는 집사 배에 올라 ‘꾹꾹이’를 하고 부엌에 있을 땐 싱크대를 서성이고…. 장난감이 아니라도 관심 가질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떤 장난감이든 집사가 없으면 잠시 가지고 놀다가 만다. 라미는 그랬다. 혼자 두고 출근하기가 미안해서 이런저런 장난감을 한가득 두고 나가지만 카메라(CCTV)를 보면 혼자 남겨지는 순간부터 그냥 잠만 잔다. 그래서 보들이를 데리고 왔지만 역시 마찬가지. 둘이 남겨지면 그냥 잠만 잤다.

집 밖에서 조종할 수 있는, 소리가 나거나 움직이는 장난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지금도 하고 있다) 와이파이로 제어가 가능한 장난감들이 있긴 한데 대부분 수입품이고 고가다. 좋아할지 아닐지도 모르는 장난감에 그 정도 돈을 쓰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기 시작한 초반엔 라디오를 켜놓고 가거나 텔레비전 예약 전원을 작동시키고 간 적도 있다. 소리가 나면 시종일관 잠을 자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 그런데 별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시시티브이에서 집사 목소리가 나와도(소리를 전하는 기능이 있다) 눈만 잠시 떴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결국 ‘(집에) 있을 때 잘 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장난감에 대한 ‘집착’을 접었다. 고양이들에게 최고의 장난감은 집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집사가 없는 한 어떤 장난감도 집사 역할을 대신 하긴 어렵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깨달음 이후 장난감에 대한 괜한 지출은 크게 줄어들었다. 병뚜껑, 플라스틱 빨대, 두루마리 화장지 종이심…. 둘러보면 널린 게 장난감이었다.

집착은 떨쳐냈지만 안타깝게도 걱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냥이들을 두고 나오거나 며칠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마음이 불편하고 눈에 보이지도 해결할 수도 없는 어떤 걱정거리를 지고 떠나는 것 같은 전에 없던 기분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장난감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였다.

서대문 박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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