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수씨와 에텔 ‘반세기만의 재회
지난 9월30일 덴마크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김판수(오른쪽)씨와 에텔 티칸데르(왼쪽)는 2박3일의 짧은 재회를 아쉬워하며 또 다시 이별을 했다. 이날 아침 김씨가 50년만의 재회를 기념해 깜짝 선물 50송이 장미를 가슴에 안은 에텔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김판수씨 페이스북 갈무리.
전례없는 열흘간의 연휴로 신문마저 긴 침묵에 잠긴 사이, 페이스북 세상에서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50년만의 첫 사랑 재회기’가 있다. 올해 나이 일흔 다섯,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도금 전문기업 호진플라텍의 창업주이자 대표인 김판수씨가 지난 1~3일 페북 담벼락에 실시간으로 공개한 ‘덴마크의 옛 친구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가 찾은 옛 친구는 일흔 두 살 핀란드인 에텔 티칸데르, 두 사람은 1967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45km 떨어진 작은 도시 헬싱외르에 있는 ‘인터내셔널 피플스 칼리지’(IPC)를 함께 다니며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유학을 마친 김씨가 그해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영어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애틋한 우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69년 5월 이후 인연은 돌연 끊겼다. 김씨가 이른바 ‘유럽유학생간첩단 조작사건’ 로 5년형을 받고 수감됐기 때문이다. 그후로도 수년간 한국 사정을 알 길 없던 에텔은 애타게 편지를 보냈지만 끝내 답장은 없었다.
김씨는 헬싱외르에서 1년간 영화 공부를 하던 196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노수 교수와 함께 동베를린을 다녀온 것이 빌미가 되어 69년 ‘간첩 올가미’를 썼다. 광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광주서중·광주일고·서울대 선배였던 박 교수의 후원으로 서울대 영문과 3학년을 마치고 런던에서 유학 중 덴마크로 잠시 건너간 것이었다. 5년 가까운 실형을 마치고 73년 석방된 그는 수재로 촉망받던 9남매의 장남이 빨갱이로 몰리는 바람에 풍비박산 난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했다. 결혼을 하고 자녀들도 키우며, 유학시절 닦은 영어와 감옥에서 배운 일어 실력으로 직접 기술을 익히고 개발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도금약품과 도금기술 전문업체인 호진플라텍을 일궜다.
그렇게 40여년이 흐른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박노수·김규남을 사형시킨 69년의 사건에 대해 중앙정보부의 고문에 의한 조작이므로 재심 등을 청구할 것을 권고했고, 2013년 서울고법의 무죄 선고가 나왔다. 2015년 12월 대법원에서도 최종 확정판결을 받았다.
확정판결 직전인 2015년 9월, 마침내 김씨는 에텔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2년 뒤, 두 사람은 50년 전 눈물로 헤어졌던 코펜하겐에서 다시 만났다. 25살 청년과 22살 처녀로 돌아간 두 사람은 9월28~30일 2박3일간 기적 같은 추억여행을 나눴다.
분단국가 한국의 야만적인 현대사가 낳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과 재회’를 코펜하겐 현지에서 프리랜서 기고가 이보영씨가 지켜봤다. 핀란드에 살며 맨처음 페이스북 검색을 통해 ‘에텔’을 찾아준 사랑의 메신저인 이씨의 동행기를 소개한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귀국 1년여만 69년 ‘유럽간첩단’ 얽혀
억울한 옥살이 5년새 연락 끊겨 “당신을 수천번도 더 꿈꾸는데…”
절절하게 직접 쓴 페이스북 메시지에
작년 봄 드디어 답신이 왔다
지난 9월28일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한 김판수씨와 마중나온 에텔의 ‘50년만의 포옹’.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먼 거리에서 누군가 번쩍 두 팔을 치켜들고 환호하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정말 너 에텔이 맞는 거니?...두 손으로 감싸안은 그의 노쇠한 얼굴에서 저 길고 길었던 50년 세월의 무게가 어쩐지 몹시 슬프게 느껴졌다. 웃고는 있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듯한 애잔한 마음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김판수씨 페이스북 갈무리.
1967년 덴마크 헬싱외르에 있는 ‘인터내셔널 피플스 칼리지’(IPC)에서 첫 사랑 인연을 맺던 시절의 25살 한국 유학생 김판수씨. 서울대 졸업반 시절 영화 공부를 하러온 촉망받던 영문학도였다.
1967년 덴마크 헬싱외르에 있는 국제학교 유학시절 교정에 서 있는 22살 핀란드 여학생 에텔 티칸데르. 김판수씨가 직접 찍어 50년간 소중하게 간직해온 사진이다.
지난 9월28일 재회 첫째 날, 코펜하겐에서 50년만에 에텔과 상봉한 뒤 김판수씨는 해질녘 해변길 산책에 나서 그 유명한 인어공주상 앞까지 가봤다. “1967년 여름 중고 모터스쿠터를 타고 혼자 시내를 쏘다닐 때 보았던 기억보다는 작지만 외로운 모습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있는 듯하다.” 김판수씨 페이스북 갈무리.
김판수씨가 ‘지중해 바다처럼 파란 눈빛을 가진 소녀’로 기억하며 간직해온 에텔 티칸데르의 22살 모습.
1969년 ‘유럽유학생간첩단 조작사건’으로 5년 실형을 받은 김판수씨가 옥중에 있던 70년 4월 에텔이 보낸 편지. 김씨의 사정을 알 길 없던 에텔의 안타까운 편지는 수년간 계속됐다. 하지만 영어로 된 편지의 사연을 모르는 가족들이 옥중의 김씨에게 전하지 않은 채 보관만 해둔 까닭에 73년 석방된 뒤에야 김씨에게 전달됐다.
지난 9월29일 재회 두번째 날, 김판수(왼쪽)씨와 에텔 티칸데르(오른쪽)는 50년 전 함께 공부하며 우정을 나누었던 헬싱외르의 국제학교를 다시 찾아가 앞마당에서 그네를 타며 젊은 날의 추억을 되새겼다. “우리들의 정이 무르익어 갔던 강의실, 강당, 식당, 기숙사 방들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교장 선생님과도 잠간 담소, 50년 만의 방문이라고 하니 무척 신기한 듯 학교 자랑을 늘어놓는다....그림처럼 아름다운 바닷가의 정경, 잘 가꾸고 정돈된 미술관 자체의 아름다움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지난 9월30일 재회의 마지막 날, 김판수씨가 에텔에게 ‘50년 세월 마음의 빚을 담은 50송이 장미꽃다발’을 깜짝 선물하고 있다. “장미꽃 50송이는 순전히 나와 동행한 회사 전무의 아이디어. 재회 50년을 상징하고 기념, 자축하는 의미로는 안성마춤이었다. 꽃다발을 건네받고 상상하지 못했던 선물에 놀라고, 기뻐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라니...순탄치 못하고 외롭게 살아온 듯한 에텔에게 짧으나마 조그마한 위로와 행복감을 맛보게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김판수씨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 9월30일 재회 마지막 날, 또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준비하며 김판수씨는 50년동안 간직해온 편지들의 복사본과 다시 만나 함께 한 2박3일 추억여행을 기록한 사진들을 에텔에게 선물했다. 김판수씨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 9월30일 마지막 날, 또 다시 찾아온 이별의 시간.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50송이 장미꽃다발을 안은 채 기차를 타고 1시간 거리 근교의 집으로 떠나는 에텔에게 김판수씨가 손을 흔들고 있다. “우리가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제로부터 50년 뒤라면 2067년이 된다는 말에 .서로 폭소를 터트리면서도,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우리들 삶의 비정함에 새삼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내 청춘의 한 때, 그리고 오랜동안 그리워했던 옛 친구에게 세상의 모든 축복이 함께 하기를 빌어본다.” 김판수씨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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