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95년생 김지민은 캣맘> 카광 블로그 갈무리
일부 인기 웹툰이 여성비하 표현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웹툰 연재 플랫폼인 포털사이트가 문제가 된 내용을 수정할 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 여성비하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초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제목을 패러디한 만화 <95년생 김지민은 캣맘>이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만화 주인공은 20대 여성 ‘김지민’과 40대 여성 ‘루루맘’이다. 만화에서 이들은 각각 대학 입시 실패와 이혼을 겪은 ‘루저’로 묘사된다. 캣맘인 이들은 썩은 고양이 사료를 아무 데나 버린다. “좋은 일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피해 주면서까지 하면 안 되죠”라고 만류하는 이웃에게 김지민은 “막으실 권리 없거든요?”라며 “이거(고양이 먹이) 건드리시면 재물 손괴하시는 거예요”라고 되받는다. 작가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몇 가지 용어와 선행이라는 명분 하에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느꼈다”라고 상황을 묘사하며 주인공의 태도를 조롱한다. 작가는 ‘루루맘’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동전을 함부로 집어 던지는 장면을 그리면서, ‘이혼 뒤 혼자 사는 여성은 원래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도 풍긴다.
이 만화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카툰 연재 갤러리에서 활동 중인 아마추어 작가 ‘카광’(본명 이상일) 작품이다. 지난달 1일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만화를 올리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카광은 지난해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을 위한 ‘혼밥 티셔츠’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주최자로 유명세를 얻었다. 당시에도 ‘혼밥 티셔츠’에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파파머리의 뚱뚱한 여성을 그려 넣어 여성비하 논란이 일었다.
만화 <95년생 김지민은 캣맘> 카광 블로그 갈무리
올 3월에는 현직 성형외과 전문의인 박아무개씨가 본인의 블로그에 성형외과를 ‘김치공장’으로, 성형외과 환자를 ‘김치’로 표현한 만화를 게재한 사실이 알려져 비판이 일었다. ‘김치’는 극우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 등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혐오표현이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자신의 블로그에 ‘닥터테디의 병원 폭파’라는 웹툰을 연재해왔다. 그가 그린 만화에선 의사 캐릭터가 “길고 힘든 4년간의 김치제조공 수련과정이 드디어 끝났어”라고 말하는 대사가 나온다. 현재 이 만화는 블로그에서 삭제됐다.
박아무개씨가 그린 만화.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네이버 등 대형 포털사이트에 웹툰을 연재하는 인기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11년째 네이버에 최장기간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조석 작가는 지난달 28일 웹툰 <마음의 소리> 1102화 ‘유행’ 편에서 한 남성이 “브라질리언 왁싱의 국기화 추진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하는 장면을 그렸다. 지난 7월5일 강남에서 혼자 왁싱숍을 운영하던 여성이 강도에게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한 달 남짓 된 시점이었다. 특별한 맥락 없이 ‘브라질리언 왁싱’과 ‘시위’란 소재를 동시에 등장시킨 것을 두고 지난달 6일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왁싱숍 살인 사건은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다’라며 여성들이 벌인 규탄 시위를 희화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이 되자 조석 작가는 피켓 문구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추진하라. 추진하라”로 수정했다.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 1102화.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최근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웹툰 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는 4월 자신의 웹툰 <복학왕>141화 ‘전설의 디자이너’ 편에서 올해 30살 여성 ‘노안숙’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노안이 콤플렉스인 이 여성 캐릭터는 꿈속에서 주인공 ‘우기명’이 자신을 집어먹으려고 하자 “누나는 늙어서 맛없어!”라고 외친다. 이 대사가 문제가 됐지만 <복학왕> 역시 해당 대사만 삭제됐을 뿐 작가나 네이버의 사과나 해명은 없었다.
네이버 웹툰 <복학왕> 141화.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한동근 네이버 웹툰 매니저는 “내부에 보수적인 편집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언론사의 데스킹처럼 연재 웹툰을 검토하진 않는다”며 “논란이 된 웹툰의 장면과 대사는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기준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