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관진(68) 전 국방부 장관을 최근 출국금지하고, 국군 사이버사령부(사이버사)의 2012년 댓글공작에 대한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김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12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휘하 사이버사의 각종 댓글공작을 기획·지휘하고, 이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장관 외에도 이 사건에 연루된 민간인 여러 명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은 필요한 시점에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 조사 여부는 김 전 장관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나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검찰은 사이버사 수사를 위해 최근 수사팀을 증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김 전 장관 등을 시작으로 2012년 국군사이버사령부(사이버사) 댓글공작 수사에 본격 착수함으로써 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정권’에 둔 수사가 하나 더 추가됐다. 국정원의 여론조작 사건에 이어 이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보는 검찰의 ‘투 트랙’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검찰은 아직 이 전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이 사건뿐 아니라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최근 피의자로 소환되면서 이 전 대통령 소환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일부 관측에도, 검찰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 (수사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특정인을 찍어놓고 하는 수사가 아니다. 정치권에서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범죄 성립 여부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표적 수사’ 시비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드러난 사이버사 댓글공작의 구조와 맥락을 볼 때 김관진 전 장관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고 나면 다음 차례는 이 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공개된 여러 문서에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사이버사가 ‘대북’이 아니라 ‘대내’ 정치공작을 벌이는 과정에 김 전 장관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윗선’에서 보고를 받은 것은 물론 활동 방향을 재가하고, 사이버사의 인원과 예산 등을 늘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 사람으로 이 전 대통령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여러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5일 공개된 2012년 3월 작성 ‘사이버사령부 관련 BH(비에이치·청와대) 협조 회의 결과’라는 제목의 사이버사 내부 문건(<한겨레> 25일치 1면)에도 공작을 위한 군무원 증원이 “대통령께서 두 차례 지시하신 사항”이라고 명기돼 있다. 결재자인 김 전 장관의 서명이 선명하다. 또 “BH는 주요 이슈에 대한 집중 대응 요구”라는 문구와 함께 ‘주요 이슈’로 “한-미 에프티에이, 제주 해군기지, 탈북자 인권 유린 등”을 예시했다. 당시 4월 총선을 목전에 두고 여야 정치권이 치열하게 맞붙고 있던 사안들이다. 이 문건에는 댓글공작의 결과를 ‘작전 결과’라는 이름으로 청와대에 ‘대면’ 보고한 정황도 기록돼 있다.
구체적인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도 증거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권이나 언론과 달리 우리는 ‘입증’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보고·지시 문건 등 증거를 확보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기초적인 준비를 마치는 대로 당시 청와대 ‘안보라인’과 국방부 핵심 간부들을 불러 당시 보고·결재 상황과 이 전 대통령의 관여 정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안팎에선 당시 청와대 천영우 안보수석,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 윤영범 국방비서관, 국방부 임광빈 정책실장 등이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다른 한편에선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다. ‘국정원장-대통령’이라는 단선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사건이지만, 검찰은 원세훈 전 원장이 ‘협조’해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증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원 전 원장의 입만 쳐다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 소환이 가시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