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방선거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뒤 두 번째로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였다. 임기 반환점을 목전에 둔 ‘중간 평가’ 성격을 갖고 있어, 정권 차원에선 향후 정국을 가늠할 중요한 분수령이자 고비일 수밖에 없었다. 선거 6개월여를 앞둔 2009년 말 진행된 국가정보원의 라디오 프로그램 사찰은 정권 차원의 이런 초조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아침 라디오가 정치와 관련된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20일 <한겨레>가 국정원 등을 통해 확인한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주요 내용을 보면, 국정원은 당시 <문화방송>(MBC)을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안팎의 지탄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파 논리에 경도된 편파보도로 정부 흠집내기”, “출근길 민심 호도” 등의 노골적 표현을 썼다. 같은 방송사의 <성경섭의 시사터치>에 대해서도 “<한겨레> 기자 등 좌파가 고정 출연하는 게 문제”, “홍아무개 피디가 ‘골수좌파’로 좌편향을 주도한다”고 봤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도 “악의적 멘트로 여론을 선동”한다고 평가했다.
<한국방송>(KBS)에 대해서도 “‘사원행동’ 소속 피디들이 방송을 정치투쟁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며 진행자와 피디의 성향을 ‘깨알 분석’했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는 “진행자가 청취율 경쟁을 의식해 좌파에 유리한 무분별한 발언을 한다”고 했고, 지아무개 피디를 겨냥해 “‘사원행동’ 핵심인물”이라고 낙인찍었다. <열린 토론>은 “진행자 민경욱씨(현 자유한국당 의원)가 중량감이 떨어져, 발언 시간 배분에만 급급해 일방적 정치공세를 방치한다”고 언급했다. 패널로 출연한 김만흠 가톨릭대 교수,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팀장 등을 ‘좌파 선전꾼’이라고 표현했다.
<시비에스>(CBS)는 구성원 전체를 ‘좌편향’으로 봤다. 국정원은 당시 “반정부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시사자키 양병삼입니다> 진행자를 교체했는데도 좌편향 피디와 작가가 왜곡보도를 한다”고 문제 삼았다. <김현정의 뉴스쇼> 역시 “김진표 의원, 박지원 의원 등 야권 및 좌파 인물 등만 출연시키고, 시청자들의 잇따른 편파보도 지적에도 시정 없이 방송을 강행한다”고 언급했다.
정부를 지지하는 방송을 하지 않는 것도 국정원의 눈에는 못마땅했다. <에스비에스>(SBS)의 <에스비에스 전망대>와 <한수진의 오늘>에 대해 “중립 논조에 얽매여 정부 지원 보도를 외면하고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반영하지 않아 균형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국정원은 또 <불교방송>(BBS)의 <김재원의 아침저널>을 겨냥해 “진행자가 박근혜 캠프 출신으로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 등 편파방송을 한다”고 했고, <평화방송>(PBC)의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의 오아무개 피디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점을 지적하며 “좌편향 종교인들의 발언을 부각해 보도한다”고 문제 삼았다.
국정원은 이런 사찰 결과를 언급하며 “라디오 제작국은 기피 부서로, 극렬 노조원 등 문제 직원이 대부분이고 얼굴이 보이지 않아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했던 피디들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좋은 프로그램으로 상도 받았는데 좌파세력을 비호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거나 “이명박 정부 때는 유독 프로그램이 끝나면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돌이켰다. 서영지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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