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 댓글부대 지휘, 수억원 받은 민간인팀장도 ‘단순가담’ 논리
민간인 관리하던 국정원 직원 허위 영수증으로 돈 빼돌렸는데도
법원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금액 전액 공탁” 이유들어 기각
법조계 “불법 선거개입 드러난 상황에서 공탁 의미없어”
민간인 관리하던 국정원 직원 허위 영수증으로 돈 빼돌렸는데도
법원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금액 전액 공탁” 이유들어 기각
법조계 “불법 선거개입 드러난 상황에서 공탁 의미없어”
법원이 이명박 정부 시기 국가정보원의 여론공작에 개입했던 이들의 구속영장을 잇따라 기각하면서, 국가 정보기관의 조직적인 범죄를 규명하는 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원은 민간인 팀장을 ‘단순 가담자’로 판단하거나, 여론공작 과정에서 거액의 나랏돈을 빼돌린 국정원 직원의 구속 수사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이 이번 사안의 중요성과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3명의 구속영장 중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의 영장을 기각했다. 이날 영장이 기각된 송아무개 민간인 팀장은 ‘피라미드 조직’처럼 수백명의 팀원을 거느리며 2009년부터 4년 동안 국정원에서 총 1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오 부장판사는 “공무원 범죄인 이 사건 범행에서 피의자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및 가담 정도, 송씨를 포함한 전체 범행 가담자에 대한 수사 및 재판 진행 상황을 고려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송씨에게 적용된 혐의가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인데, 민간인 신분인 송씨는 국정원이 주도한 범죄에 가담한 데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송씨는 이미 2013년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때도 허위진술을 했고, 이번 검찰 수사를 앞두고도 공범들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된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선 국정원이 먼저 제의했더라도 몇 년간 조직적인 불법 선거·정치개입을 해온 이를 ‘단순 조력자’로 본 법원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민간인 팀장은 일종의 중간기획자”라며 “민간인 팀장들의 ‘지위와 역할, 가담 정도’를 별일 아니라고 보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송씨와 함께 영장이 기각된 문아무개씨는 2011년 당시 국정원 직원으로 심리전단의 외곽팀을 담당하며 지인들의 인적사항을 몰래 도용해 허위로 현금 수령 영수증을 만들어 제출하는 수법으로 수천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를 받고 있다. 더구나 문씨는 당시 범행이 적발돼 감찰조사를 받게 되자 국정원의 여론조작을 폭로하겠다고 해 별다른 처벌이나 징계 없이 면직되는 등 죄질도 나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찰 조사가 임박하자 출국을 시도했으나 출국금지 조처에 막혔고, 수사 착수 직후 자신의 휴대전화를 해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 부장판사는 이날 문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로 “피의자가 범행을 인정하며, 구속영장 청구 이후 피해 금액을 전액 공탁한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도 ‘피해 금액 공탁’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 사건은 누굴 때려 피해를 물어주는 사안과 다르다. 불법적인 선거개입 과정에서 혈세를 빼돌린 건데, 피해 금액 공탁이 이 사건에서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앞서 법원은 양지회 ‘사이버동호회’ 회원 150여명을 동원해 여론조작을 벌인 노아무개 전 양지회 기획실장의 구속영장도 비슷한 이유로 기각했고, 증거인멸에 나선 박아무개 사무총장의 구속영장도 ‘은닉한 증거의 가치’를 문제삼아 기각했다. 검찰은 이날 영장 기각에 대해 공식적인 반발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중요 길목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다”며 수사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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