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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짬] “소금물에 9번 찌고 5천번 두들겨야 칡붓 하나 만들죠”

등록 2017-09-13 19:22수정 2017-09-13 19:49

[짬] 전통의 붓 만드는 유필무씨
유필무 붓장인
유필무 붓장인

그는 칡으로 붓을 만든다. 동물의 털로 붓을 만든다는 상식이 깨진다. 그가 만드는 칡붓의 공정을 보자. 3~5년생 칡뿌리와 줄기를 찐다. 소금물에 9번을 찌고, 9번을 말리며 칡에 있는 녹말과 기름기를 뺀다. 섬유질만 남긴 칡뿌리와 칡줄기를 망치로 두드린다.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끊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두드린다. 최소 5천번에서 3만번까지 두드린다. 이런 과정은 최소 3개월이 걸린다. 칡줄기로 만든 붓은 양모 등 동물의 털로 만든 붓과는 느낌이 다르다. 먹물을 머금는 능력이 떨어져 붓을 멈추면 먹물이 종이로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거칠다. 우연성이 많다. 지난 42년간 붓을 만드는 일에만 몰두한 유필무(57)씨는 말로만 전해지던 갈필(칡붓)을 실제로 만들었다. 그를 지난 6일 충북 증평의 공방에서 만났다.

그가 만든 식물성 붓은 짚붓, 억새붓, 띠풀붓, 종려나무붓 등 여러가지이다. 물론 동물털 붓을 주로 만든다. 동물털 붓 만드는 방법도 특이하다. 붓에 쓰는 동물털은 다양하다. 일반적인 붓엔 흰 염소의 털을 쓴다. 족제비 꼬리, 노루 앞가슴 털, 이리 털, 말의 털도 재료이다. 너구리 털이나 소 귓속 털도 쓰인다. 대부분 붓은 털에 있는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열처리를 한다. 붓이 먹을 머금기 위해선 기름기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산 붓은 생석회를 넣은 물에 하룻밤을 담그기 때문에 털이 잘 부서진다고 한다. 시중의 붓이 보기는 좋지만 쓴 지 오래지 않아 털이 빠지는 이유이다. 유씨는 전통의 방법을 고수한다. 기름 잘 먹는 종이(한지)에 털을 가지런히 늘어놓은 다음, 왕겨를 태운 재를 고루 뿌린다. 한지를 말아서 다듬이돌로 눌러 놓는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1년 가까이 눌러 기름기를 뺀다. 한 달에 한 번씩 종이를 바꾸고 왕겨 재도 바꾼다. 고집스럽다.

그가 만든 붓대에는 글과 그림이 새겨져 있고 옻칠도 3번 이상 한다. 고급스럽다. 그가 만든 붓 중에는 ‘손안의 붓’도 있다. 붓대가 한뼘 크기이다.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다. 붓대의 양쪽에 붓털을 붙인 붓도 있다. 또 빗자루만큼 큰 붓도 있고, 목탁 모양의 붓도 있다.

그는 스스로를 ‘털쟁이’라고 부른다. 털귀신이 붙어서 떠나지 않는단다. 그는 국내 ‘최고의 붓 제작 장인’으로 불린다. 아직 국가중요무형문화재에 필장(붓 제작 장인)은 없다. 그는 충청북도의 지방무형문화재로 곧 지정될 예정이다. 15일부터 24일까지 경기도 가평의 취옹예술관에서 자신이 만든 붓 400여점을 전시하는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42년 동안 붓 만든 자칭 ‘털쟁이’
공장서 기술 배운 뒤 88년 독립
중국산 붓 맞서 고급붓 지켜내
시간 거슬러 전통 제작법 찾아 재현

소 귓속 털 쓴 ‘우이모필’ 대표작
“붓은 자연…여유 가지고 기다려야”

유필무 붓장인
유필무 붓장인

그의 붓 인생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사정이 시작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3살에 식당에 취직했다. 곧 가발공장으로 옮겨 각성제를 먹으며 밤새 일을 하기도 했다. 우연히 붓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붓 만드는 기술을 익힌 그는 1988년 독립해서 붓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값싼 붓이 들어오며 국내산 붓은 거의 수명을 다했으나, 그는 고집스럽게 고급스러운 붓을 만들었다. “중국에 가서 붓 시장을 살펴봤어요. 당시 중국인들이 한국 붓 상인과 일본 붓 상인의 차이를 이야기하더군요. 일본인들은 가격에 관계없이 좋은 붓을 찾아 사 갔는데, 한국인들은 품질에 관계없이 싸구려 붓을 사 갔다는 겁니다.”

붓 만드는 작업은 원모 선별에서부터 30여 과정을 거쳐야 하며 250여 회의 손길이 필요하다. 남들이 현대화, 기계화할 때 그는 거꾸로 갔다. 전통의 붓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 재현했다. 그래서 그의 붓은 비싸다. 한 자루에 15만원 정도이니, 시중의 붓보다는 세 배 정도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붓을 사러 온 사람과 얘기를 해보고 팔기를 거부하기도 한단다. “제 붓의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만 팝니다.” 1996년 칡붓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그가 판 칡붓은 100자루가 안 된다고 한다. “가슴이 아프고 슬퍼요. 엄청난 노력과 공력을 들여서 만든 붓인데, 알아주질 않네요.”

붓 만드는 첫 작업은 원모를 고르는 것이다. 주로 고르는 동물털은 양의 뒷다리 사타구니 안쪽에 있는 털이다. 11㎝ 이상 되는 털을 붓용으로 고르고, 짧은 털은 그림용 붓을 만드는 데 쓰인다. 털에서 기름을 빼고 이물질을 제거하는 빗질을 한 뒤 가위로 자른다. 이 ‘재단’의 과정은 붓방의 최고 책임자들이 한 ‘비술’이다. 이 가위질이 자신이 만드는 붓의 모양과 의도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리고 털타기(털이 고루 섞이도록 하는 작업), 초가리 묶기(붓털의 끝을 실로 묶는 작업) 등을 거쳐 붓털을 준비한다. 또 1년산 햇대로 붓대감을 구해 소금물에 삶아 진을 뺀다. 대나무 속을 파고 붓대에 옻을 칠해 붓대와 붓털을 끼워 완성하는 초가리 맞추기를 해서 붓을 완성한다.

하루 15시간 작업하는 그는 붓대부터 붓걸이까지 남의 도움 없이 모두 스스로 만든다. 그의 대표작은 소 귓속에 난 털로 만든 우이모필로, 드라마 <이산>에 소개됐다. “붓은 자연과 같아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꽃과 열매를 얻듯이 붓을 만드는 작업도 여유가 있어야 제대로 된 붓을 만날 수 있어요.” 5명의 식솔이 있는 가장으로 가난을 달고 살지만, 붓장이로 자존감을 잃지 않는 그의 공방 문턱에는 그가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길냥이가 대여섯 마리이다.

증평/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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