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사이버외곽팀’ 소속 민간인 팀장들에게 활동 대가로 현금을 주고, 대신 ‘수령증’을 받아 이를 보관하는 식으로 예산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국정원은 민간인 팀장들을 수사의뢰해 놓고도 보안 등을 이유로 횡령 혐의를 입증할 증거인 ‘수령증’ 등 자금집행 자료는 제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일 국정원과 검찰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정원은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사이버외곽팀을 운영하면서 민간인 팀장 등 총 48명에게 활동실적과 파급력에 따라 활동비를 현금으로 지급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돈을 건네며 이들로부터 이름·주민등록번호 등 신상 정보와 함께 돈을 받은 날짜, 금액 등이 적힌 ‘수령증’을 받았다. 국정원 직원들은 이 수령증 원본은 예산을 총괄하는 심리전단에 보내고, 스캔한 사본은 내부 전자결재 시스템에 올렸다고 한다. 국정원 내부 시스템에 민간인 팀장들에게 여론조작의 대가로 언제 얼마의 예산이 집행됐는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검찰도 최근 민간인 팀장들과 국정원 직원들을 소환해 조사하며 이런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정원이 검찰에 넘긴 수사 참고 자료에는 이런 구체적인 자금집행 내역이 빠진 채 민간인 팀장 이름과 활동 기간, 수령한 총액 등 대략적인 내용만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국정원에 자금 집행과 관련한 자료들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뚜렷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국정원 내부적으로는 ‘보안’ 등을 이유로 자료 이첩에 소극적인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선 “민간인 팀장들에게 지급한 돈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예산이어서, 국정원 예산이 국회에서 깎일까 꺼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민간인 팀장들이 정치·선거개입을 한 사실을 밝혀내더라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서는 한번 판결이 내려진 범죄에 다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 원칙’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 형을 받은 원 전 원장을 같은 혐의로 기소할 수 없어, 불법행위에 예산을 갖다 쓴 국고 횡령 등의 혐의로 추가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 안팎에선 ‘수령증’ 등 자금집행 자료가 원 전 원장 등의 횡령 혐의를 입증할 핵심 단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인 팀장 활동비가 ‘현금’으로 지급돼 계좌추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검찰로서는 해당 자료 확보가 절실한 셈이다. 앞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는 ‘사이버외곽팀’을 운영하면서 2012년 한해만 30여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정황을 확인한 바 있다.
국정원이 민간인 팀장을 수사의뢰하면서 국정원 직원들은 빼놓은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민간인 팀장들이 수사를 받고 있지만 정작 이들에게 지시를 내린 직원들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검찰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내부 징계를 검토하는 등 절차를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형평성이나 적폐청산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원 전 원장이 전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파기환송심 결과와 관련해 대법원에 상고한 데 이어, 검찰도 이날 상고장을 제출했다. 검찰 관계자는 “선거운동을 시기별로 나눠 일부 제한한 부분과 트위터 일부 계정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 등은 대법원의 판단을 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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