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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공익소송, 비용 부담 낮출 수 없나요?

등록 2017-09-04 20:22수정 2017-09-04 22:50

동네변호사가 간다

민사나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판결을 내리면서 반드시 소송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도 정한다. 소송비용 부담의 원칙은 패소한 사람이 내는 것이다.(민사소송법 제98조) 소송비용의 대부분은 변호사 보수다.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서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청구한 소가(소송물가액)에 비례한다. 일반인들은 소송을 고려할 때 깊이 생각하지 않지만 요즘은 소송 확정 뒤 패소하면 소송비용 폭탄을 맞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그런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국가기관에 고용된 계약직 직원들 4명이 부당하게 강임(아랫자리 임명) 및 해고되었음을 주장하며 미지급 급여를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했다. 치열하게 싸웠는데 1심 승소 뒤 2심, 3심 패소로 끝났다. 법원은 1, 2, 3심 전체 소송비용을 원고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패소의 아쉬움이 남아 있던 어느 날 승소한 국가 쪽에서 소송비용확정청구를 해왔다. 원고별로 소송비용으로 합계 5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원이 자신의 억울함을 인정해주지 않은 것도 억울한데 국가에 소송을 한 대가로 다시 수백만원을 물어주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처럼 최근 들어 국가나 기업 등이 소송에서 승소하면 패소한 상대방에게 소송비용확정청구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법원은 이러한 소송비용 패소자 부담 제도가 부당한 제소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당한 제소에 대해서까지 소송비용을 일률적으로 패소자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개선과 잘못된 제도 개선을 위한 공익인권소송을 제약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생각해보자. 어떤 소송도 100 대 0의 소송은 없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따져보다 보면 판사도 판결문을 쓰는 순간까지 승패를 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49 대 51의 심증으로 판결을 하는 경우가 꽤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주문은 ‘원고의 청구 기각’ 단 한줄이지만 실질은 51%를 패소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소송비용을 패소한 원고가 전부 부담하는 것이 옳은가.

일부 승소의 경우도 문제다. 국가의 위법행위로 피해 입은 시민이 3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일부 승소해서 300만원이 인정되었다고 하자. 이때 법원은 소송비용의 10분의 9를 원고가 부담하라고 판결한다. 청구액 중 10분의 1만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소송 내용은 승소한 것인데도 액수 때문에 소송비용의 10분의 9를 내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럼 처음부터 소가를 낮게 청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소가 3천만원까지는 소액사건심판법이 적용되어 소액재판을 받는다. 소액재판은 한 판사가 워낙 많은 사건을 다루다 보니 한 사건당 심리하는 시간이 극히 짧다. 제대로 주장을 정리하여 다툼을 하기 어렵다. 게다가 법상 소액사건 1심은 판결문에 판결이유를 적지 않아도 된다.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기 위해 공익인권소송을 제기하면서 판결이유도 나오지 않는 1장짜리 판결문을 받기를 누가 원하겠는가. 그러니 많은 공익인권변호사들이 눈물을 머금고 소액재판을 피하기 위해 3천만원이 넘는 소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승소하고도 소송비용 부담 때문에 오히려 피고에게 돈을 더 줘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기곤 한다.

송상교 변호사.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송상교 변호사.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나는 법원이 본안의 승소와 패소 판단 못지않게 소송비용 부담 문제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주기를 요청한다. 법원이 현행법 안에서도 좀더 관심을 기울이면 시민이 소송비용으로 당하는 억울함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송비용 분담 판결 시 승패에 따라 기계적으로 소송비용을 산정하지 않고 소송의 실질적 내용과 취지를 살펴서 비록 패소한 당사자라도 소송비용의 과중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나아가 공익의 원칙에 기초하여 몇가지 소송 유형에 대해서는 소송비용 부담의 원칙을 달리 정할 것을 제안한다. 공익인권소송이나 경제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당사자인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 당사자가 패소했다고 하더라도 소송비용의 부담을 감액하거나 면제하는 규정을 도입할 수 있다. 적어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경우 국가가 국민에게 거액의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것을 제한하는 규정이라도 도입해야 한다.

송상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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