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파장이 전국으로 확산된 16일 강원 철원군의 한 농장에서 닭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농장의 계란에서 피프로닐이 국제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됐다고 이날 밝혔다. 연합뉴스
동물자유연대·카라 등이 공개한
‘밀집사육’ 산란계 농장 실태 동영상
날개조차 펴지 못하고 사체 위 생활도
동물 복지 외면하다 ‘살충제 달걀’ 발생
정부 인증 ‘동물복지농장’ 턱없이 부족
‘밀집사육’ 산란계 농장 실태 동영상
날개조차 펴지 못하고 사체 위 생활도
동물 복지 외면하다 ‘살충제 달걀’ 발생
정부 인증 ‘동물복지농장’ 턱없이 부족
유럽에 이어 국내에서도 ‘살충제 달걀’이 발견됐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닭 진드기 등 해충이 번지기 쉽고 박멸도 어려운 사육환경, 이른바 ‘밀집 사육’ ‘공장형 축산’이 ‘살충제 달걀’을 낳았다는 겁니다. 국내 산란계 농장 대부분이 ‘밀집 사육’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동물자유연대와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는 그동안 ‘공장형 축산’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실제로 산란계 농장에 들어가 실태조사 동영상을 찍기도 했는데요, 신문 1개 면을 반으로 접은 크기(0.05㎡, 정부가 제시한 적정 사육면적)만을 허락받은 채 일생을 서서 알만 낳다 죽는 닭의 짧은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 왜 닭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나
동물자유연대 ‘산란계 실태조사 동영상’
동물자유연대가 2013년 공개한 ‘산란계 실태조사 동영상’을 보면, 우선 촘촘하게 쌓아 올린 철제 우리가 눈길을 끕니다. 이른바 ‘배터리 케이지’입니다. 공간을 절약하고 사료급여 등 관리가 쉬워 양계업계에서 선호한다고 합니다. 닭들의 울음소리가 사육장을 울리는 가운데 가까이 들여다본 우리 안에서 닭은 날개조차 펴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산란계 한 마리당 적정 사육면적은 오랫동안 0.042㎡에 머물러 있다가 2014년 0.05㎡로 확대됐습니다만, 여전히 A4용지(0.062㎡)보다 작습니다. 닭이 날개라도 펼치려면 최소 0.065㎡, 날갯짓을 하려면 0.198㎡가 필요합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2015년 ‘공장 대신 농장을!’ 캠페인 공식 동영상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2015년 ‘공장 대신 농장을!’ 캠페인을 하며 만든 동영상도 ‘배터리 케이지’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2011년 경기 포천의 한 산란계 농장을 시작으로 2015년 4월까지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의 축산농장을 조사·연구해 만든 이 동영상을 보면 좁은 우리 안에서 사체를 딛고 서 있는 닭도 보입니다. 일부 농장의 사례라고 보기에는 ‘배터리 케이지’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장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비좁은 공간에 갇혀 스트레스 받은 닭이 다른 닭을 공격하자, 갓 태어난 암평아리 부리를 잘라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산란장에는 24시간 인공조명을 켜 밤낮없이 알을 낳도록 했습니다. 닭이 산란을 시작하고 1년 뒤쯤 털갈이할 때가 되면 알이 뜸해지는데요, 이때 5~9일 동안 밥을 굶기고 빛을 차단합니다. 12~16주 걸리는 털갈이를 6~8주 안에 끝내 달걀을 빨리 얻기 위해서입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20년 이상을 사는 닭이지만, ‘공장식 산란계’는 2년 정도면 산란 능력이 퇴화돼 도계장으로 넘겨집니다. 그때까지 닭은 달걀을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의 ‘부품’입니다.
이러다보니 국외에서도 ‘배터리 케이지’ 반대 운동이 활발합니다. 2015년 미국의 한 동물보호단체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코스트코’에 달걀을 납품하는 양계농장에 잠입해 찍은 동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풀밭에서 뛰어노는 닭들의 모습이 그려진 포장을 하고 납품되는 달걀이었습니다. 국내와 다르지 않은 철제 우리 속에 가득 찬 닭 중에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눌려 있거나 사료 배급로에 목을 박고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해외 동물복지 축산정책 현황조사>를 보면 미국의 경우 모두 7개 주에서 ‘농장동물 감금법령’이 시행되고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산란계 케이지 사육을 금지한 주는 캘리포니아와 미시간 2곳뿐입니다.
■ ‘살충제 달걀’ 뒤에 ‘공장형 축산’ 있다
이번에 국산 달걀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닭에는 사용할 수 없는 살충제입니다. 사람에게는 두통이나 감각 이상, 장기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피프로닐이 검출된 경기 남양주 농장주는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서 “옆 농가에서 진드기 박멸에 효과가 좋다는 얘길 듣고 사용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닭 진드기는 과거부터 있었지만 밀집 사육하는 국내 양계장 특성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이 겹쳐 감염률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산 닭 진드기 감염률은 94%에 이릅니다.
방사 상태의 닭이라면 ‘모래 목욕’을 통해 몸에 붙은 이물질이나 기생충을 없앨 수 있습니다. 여기엔 진드기도 포함됩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제한되지 않은 환경에서 암탉은 이틀에 한 번꼴로 모래 목욕을 한다고 합니다. 철제 우리에서 꼼짝 못하게 갇혀 있는 닭은 ‘모래 목욕’을 할 수 없고 한번 발생한 진드기는 밀착된 닭들을 따라 번지기도 쉽습니다. 반복되는 살충제 살포에도 진드기가 극성을 부리자 “효과가 좋다는” 피프로닐을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케이지에 갇혀 사는 산란계는 진드기뿐 아니라 조류 인플루엔자 등 각종 질병에도 취약합니다. 동물 복지 측면 뿐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공장형 축산’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 동물복지 농장에 사는 닭, 전체 2.5% 남짓
물론 이렇게 불행한 닭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2012년 산란계를 대상으로 동물복지 인증제도를 처음 시행했습니다. 지금은 돼지, 육계, 한우·육우·젖소, 오리까지 인증 대상 가축이 늘어 났는데요, 이른바 ‘동물복지 축산 농장’은 2017년 현재 전국 132곳에 이릅니다. 그중 92곳이 산란계 농장입니다.
국립축산과학원이 발행한 <동물복지 산란계농장 인증기준 해설서>를 보면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은 무엇보다 폐쇄형 케이지(우리) 등에 닭을 가두어 사육해서는 안 됩니다. 사육밀도는 바닥면적 1㎡당 9마리 이하여야 하는데 이는 별도 산란장과 방목장 면적을 제외한 면적입니다. 나무 등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닭의 습성을 고려해 닭 1마리당 최소 15㎝ 이상의 홰(나무 막대)를 설치해야 합니다.
또한 진드기 등을 제거하기 위한 모래목욕을 할 수 있게 바닥의 최소 3분의 1 이상은 깔짚으로 덮여 있어야 하고 조명은 최소 8시간 이상 밝게 하고 최소 6시간 이상 어둡게 조절해야 합니다. 부리 자르기도 응급한 경우를 빼고는 금지하며, 강제 털갈이도 안 됩니다.
문제는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 비율이 아직 너무 적다는 겁니다. 2017년 3월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국의 산란계 농장(3천마리 이상 사육)은 869곳, 5160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습니다. 이중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은 92곳, 117만 마리에 불과합니다. 전체의 2.5% 가량입니다.
‘살충제 달걀’ 파문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그동안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건강한 달걀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그동안 우리가 먹은 달걀 안에 닭들의 ‘절망’이 담겨 있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참고
동물자유연대 누리집
강제 털갈이·부리 절단…A4 감옥속 암탉 비명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동물자유연대 ‘산란계 실태조사 동영상’ 갈무리
강제 털갈이·부리 절단…A4 감옥속 암탉 비명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