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기간에 ‘소셜 블랙아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소셜미디어와 대규모 정전 상태를 일컫는 블랙아웃의 합성어인 소셜 블랙아웃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한다는 의미인데요. 카카오톡·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휴가 기간이라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선택하는 것이죠. 휴가 중 단체 대화방 나가기,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 삭제, 스마트폰 전원 끄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없이 휴가지로 떠나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저도 지난 2일 휴가를 가면서 ‘미디어 없는 휴가, 가족과 함께하는 휴가’를 동료에게 선언했습니다. 평소 업무상으로나 사적으로 소셜미디어 활용도가 높은 저는 언젠가부터 가족과 함께 있어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엄마~ 핸드폰 좀 그만 보고 내 말 좀 들어봐~”, “엄마, 또! 또! 건성건성 대답하지 말고 나 좀 보라고”, “엄마는 휴대폰 보면서 왜 우리는 못 보게 해?”라는 말을 최근 아이들에게 자주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휴가엔 스마트폰을 포함해 텔레비전·신문과 같은 미디어를 덜 보고, 가족과의 스킨십 시간을 늘리고, 혼자서 멍 때리는 시간을 자주 갖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최근 8살 아들이 스마트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는데, 게임 시간이 점점 늘고 있어 걱정도 됐고요. 휴가 기간에 아들의 게임 사용 시간도 다시 재정립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만은 해야 되고 저것도 꼭…
스마트폰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였을까요? 미디어 없는 휴가를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과적으로 ‘폭망’했습니다. 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 하루 만에 제 결심은 산산이 무너졌습니다. 막상 휴가가 시작됐는데 휴대폰을 끌 수 없었어요. 친정어머니나 시집 식구들, 택배 기사처럼 꼭 연결돼야 할 사람들이 있었고, 지도 검색처럼 당장 필요한 기능이 있었습니다. 앱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앱을 지우면 그동안 나눴던 대화들이 사라지므로 불편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스마트폰을 방치하는 전략을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습니다.
서울을 방문한 외할머니의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은 게임 세계에 입문했다. 사진은 할머니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휴가 첫날, 스마트폰을 집안 한쪽에 방치하고 거실에서 아이들과 뒹굴며 놀았습니다. 평소보다 뽀뽀도 많이 하고, 장난도 치면서 느긋하게 놀았지요. 아이들과 ‘부비부비’도 한두 시간이지요. 오후에 딸과 박물관 나들이를 나갔다가 늦은 오후 집에 돌아왔습니다. 쉬는데 자꾸만 거실 구석의 스마트폰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습니다. 오후 6시께 카카오톡을 확인하는데 친한 선후배들이 말을 겁니다. 응답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했습니다. 선후배들의 아이들 휴가 사진을 보며 이모티콘을 팡팡 날리고, 저도 저희 아이들 사진을 보내고 말았지요. 비슷한 시간에 회사 부서 단체 대화방에 전체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휴가 끝나고 확인해도 되는데 내용이 궁금해 잽싸게 확인했어요.
스마트폰·인터넷 차단 ‘소셜 블랙아웃’
“오직 가족과” 휴가 전 당차게 선언
작심삼일은커녕 하루 만에 ‘폭망’
그것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
휴대폰 집 한구석에 치워놓고
한두 시간 뒹굴뒹굴하다가 외출
돌아와 쉬는데 자꾸 ‘그쪽’으로 눈길
카톡 대화 달콤한 유혹에 결국 ‘꾹꾹’
가장 큰 방해꾼은 친정어머니
스마트폰 게임으로 손주들과 깔깔
어차피 아이들 미래는 디지털 소통
통제보다 활용 위한 조절력 키워야
미디어교육 전문가 정현선 교수
“보호는 필요, 보호주의는 해로워”
가장 큰 방해꾼은 친정어머니였습니다. 친정어머니는 휴가 기간에 맞춰 서울에 잠깐 올라오셨습니다. 예순살이신 친정어머니는 저보다 더 스마트폰 친화적이십니다. 저는 게임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친정어머니는 여가 시간에 게임을 즐깁니다. 아이들이 게임을 접한 계기도 외할머니를 통해서입니다. 쿠키런, 롤링스카이, 포켓몬고 같은 게임을 저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흥미가 없기 때문이죠. 외할머니의 휴대폰에는 이런 게임들이 있고, 아이들은 외할머니를 만나면 게임을 마음껏 하지요.
스마트폰을 통해 아이들은 멀리 떨어진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스마트폰도 소통을 위한 하나의 도구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8년부터 디지털 교과서 사용 시작
“엄마~ 게임 많이 하면 눈도 나빠질 수 있고 자세 때문에 거북 목도 될 수 있잖아요. 원래 저랑 아이들이 한 약속은 한 번에 15분씩 하루에 한 시간 넘지 않게 하는 거예요. 최근엔 남편이 약간 규칙을 변경해서 한 번에 15~30분을 하되 전체 하루 한 시간 넘지 않게 하고 있어요. 그러니 엄마도 이 원칙을 지켜주세요.”
친정어머니께 부탁드렸지만 규칙은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평소 게임 시간을 엄격히 지키는 편인 저도 아이들이 외할머니를 만나 깔깔 웃으며 즐겁게 게임을 하며 노는데 분위기를 깰 수 없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친정어머니는 최신 기종 핸드폰을 갖고 있었어요. 이 핸드폰에는 사진을 찍을 때 다양한 이모티콘을 적용해 재밌는 사진이나 ‘움짤’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기능이 있더군요. 아이들은 할머니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기능을 적용해 재밌는 사진과 동영상을 연출하며 할머니와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지요.
제 경험에서 보듯 미디어 이용 습관을 한 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나 혼자 미디어 없는 휴가를 보내겠다고 해봤자 아무 소용 없습니다. 가족 전체의 합의된 규칙과 공통 습관, 문화가 더 중요하더군요. 또 단순히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접근만으로는 어떠한 변화도 이뤄낼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미디어 교육 전문가인 정현선 교수(경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는 최근 <시작하겠습니다, 디지털 육아>라는 책에서 ‘디지털 페어런팅’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한국 부모가 전반적으로 디지털 이용에 관한 육아에 보수적인 경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거나 아예 디지털 미디어를 없애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부모가 많다는 것이죠.
요즘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쥔 엄마, 아빠에게 둘러싸여 생활하므로 스마트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또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 데이터, 로봇과 더불어 살아갈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디지털 미디어가 작동하는 방식을 잘 이해해야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2018년에는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과서 사용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통제 중심의 접근법보다는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자기 조절력을 어떻게 키워줄지, 또 단순히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생산자가 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염두에 두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죠.
여러분의 ‘디지털 육아’ 어떠세요?
정 교수는 “보호와 보호주의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디지털 이용에 관해 연령, 시기, 방법 등에 부모의 보호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아이를 디지털 미디어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보호주의는 오히려 아이에게 해롭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알려주려면 어느 시기엔 자전거 뒷부분을 잡았다가 부모가 손을 놓아야 하잖아요. 디지털 미디어도 아이 스스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부모 나름의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는 정 교수도 이번 휴가 동안 아이와 사촌 조카들을 데리고 가상현실(VR)을 체험해볼 수 있는 박물관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아이에게 게임을 하면 좋은 이유 3가지만 말해줄래?”라고 말을 거는 등 게임을 소재로 대화도 한다고 합니다. 좋은 게임이나 앱을 골라서 아이에게 추천해주기도 하고요.
정 교수는 “효과적인 디지털 육아를 위해서는 좀 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게임이나 만화처럼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것을 현대적인 문화의 산물이라고 인정하고 아이가 왜 이러한 것들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알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미디어 없는 휴가 계획은 물거품이 됐지만, 현명한 디지털 육아에 대한 힌트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디지털 육아’는 어떠신가요?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미디어 교육학자 정현선 교수의 디지털 육아를 위한 5대 원칙
1. 부모 자신의 미디어 이용 행동 점검이 먼저다. 자녀는 부모의 행동을 거울삼아 미디어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2. 가족 모두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정하자.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아이와 몸으로 함께 놀거나 야외로 나가거나 책을 읽어주는 등 별도의 다른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하자.
3. 자녀의 디지털 미디어 이용 행태를 살펴보며 칭찬할 만한 점이 없는지 살펴보자. 아이들은 미디어를 이용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몰입하고,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미디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임을 잊지 말자.
4. 아이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유튜브 동영상, 웹툰, 게임, 소셜미디어 등에 관심을 갖고 아이와의 대화 소재로 삼거나 스스로 이용해보자. 그러나 아이가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자녀의 친구 관계를 염탐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5.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미디어 교육의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자. 어린 자녀에게 부모가 이용하는 미디어의 목적과 기능에 대해 알려주고, 자녀와 함께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미디어를 찾아 이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