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3일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가 과거 국정원의 ‘민간 여론조작팀 운영 실태’를 확인하면서 지난 정부 내내 끊이지 않았던 국정원의 불법적인 사이버 여론조작전 규모와 실체를 온전히 가늠해볼 수 있게 됐다. 또 이번 조사를 통해 국정원이 정부·여당을 위해 특수활동비를 써가며 여론조사를 수차례 했다는 사실도 드러나면서, 수십조 예산을 쓰는 국가정보원이 지난 10년 동안 정권 유지·강화를 위한 국책 친위부대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국정원의 ‘민간 여론조작’ 활동 규모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시작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과감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확인된 2012년 활동만 보더라도 국정원은 ‘민간 여론조작 조직’을 30개팀 35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로 구성했고, 이들에게 매달 3억원 안팎, 한해 30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지급했다.
국정원은 여론조작팀 30여개의 팀장급 인물에게 매달 300만원에서 최대 700만원 정도까지 활동비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팀장 아래 실제 여론조작에 가담한 이들이 100여명 정도 배치됐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에게는 ‘실적’에 따라 매달 수만원에서 수십만원 정도가 지급됐을 것이란 계산이 가능하다. 실제 국정원의 민간 여론조작부대 가운데 하나인 ‘알파팀’에서 2009년까지 활동했던 ㄱ씨는 “활동비는 중간 간부를 통해 은행 계좌로 받았고, 이 돈이 많으면 한달에 50만원을 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정원이 민간인 팀장급 관리책에게 매달 거액의 돈을 주면, 이들은 자신의 ‘수당’을 떼고 나머지 돈으로 ‘댓글 알바’들에게 ‘여론조작 하청’에 대한 ‘건당 수당’을 준 셈이다.
앞서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드러난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은 이번 조사 결과에 비춰 보면, 전체의 퍼즐을 맞추기 위한 조각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국정원이 불법적인 사이버 여론 조작에 ‘민간 외부조력자’를 동원해온 사실은 2013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처음 드러났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국정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돈 3천여만원이 민간인 이아무개씨에게 흘러간 정황을 확인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은 2011년 12월께부터 1년여간 이씨를 이용해 선거 기간 야권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방식 등으로 여론을 조작했다. 대가로는 매달 300만원 정도가 이씨 은행 계좌에 입금됐다. 이때만 해도 ‘국정원 외부조력자’ 전체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민간 여론조작 조직’의 행동 양태가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난 건 지난 4월 <한겨레21> 보도를 통해서였다. 당시 보도를 보면, 이미 2008년께부터 국정원 현직 정보 파트 요원은 보수단체 간부를 ‘마스터’(팀장)로 둔 ‘알파팀’이라는 조직을 꾸렸다. ‘마스터’ 아래에 ‘댓글 알바’들을 배치한 뒤, 이들을 통해 사이버공간에서 국정원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론조작을 시도했다. 알파팀은 ‘마스터’에게 받은 국정원 여론대응 지침을 인터넷에서 유포하고, 실적에 따라 ‘고료’(활동비)를 받았다. 고료는 게시글의 수준과 영향력에 따라 건당 2만5천원에서 5만원까지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해당 의혹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대응했지만, 이번에 그 해명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게 됐다.
이에 대해 알파팀에서 일했던 ㄱ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여론조작팀이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기 때문에 30개팀이 넘는 조직이 꾸려지고 수십억원에 이르는 국정원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국정원이 민간인을 동원한 여론조작을 시도하면서 알파팀이 ‘테스트베드’ 구실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석재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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