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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신 온전할 때 계약하는 ‘임의후견제’, 노후 대비책 될까

등록 2017-07-10 21:01수정 2017-07-11 10:52

자기 뜻대로 후견인·내용 정해 치매·정신질환 대비하는 제도
질병 시작뒤 편법신청 부작용도…홍보 부족, 편법 활용에 법원 제동
청각장애와 가벼운 지적장애가 있는 ㄱ씨(24)는 지난해 말 어머니가 췌장암 말기라는 말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ㄱ씨는 19살 때부터 제조업체 생산직으로 일하는 등 경제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보청기를 껴야 하는 등 일상생활에선 불편함이 있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온 터였다. 아버지는 ㄱ씨보다 심한 청각장애를 앓고 있어 그를 돌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ㄱ씨는 성년후견개시 심판 청구를 고민했지만, 경제활동의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걸 염려해 주저하고 있었다.

ㄱ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사회복지사였다. 그는 지난해 6월 한 사회복지법인과 후견계약을 맺었다. 재산 관리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재산을 은행에 맡겨두는 신탁 계약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난 1월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ㄱ씨가 후견개시를 청구하자, 이번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반대를 했다. 생판 남인 사람을 믿기 어려우니 자신들이 후견감독인이 되겠다고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ㄱ씨가 인지능력이 크게 뒤떨어지지 않아 계약 내용을 숙지하고 있고, 할아버지 등의 친족과 왕래가 드물었던 점을 고려해 한 법률사무소가 후견감독인을 맡는 내용으로 후견 개시를 결정했다. 지적장애인에 대해 임의후견이 개시된 첫 사례다.

ㄱ씨가 맺은 임의후견(후견계약)은 성년후견제 중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가장 폭넓게 보장하는 제도로 꼽힌다. 임의후견은 장래 치매나 정신질환을 앓아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게 될 때를 대비해 미리 특정인과 후견계약을 맺는 것을 말한다. ㄱ씨처럼 가벼운 장애를 가진 사람도 후견인으로부터 일정 정도 도움을 받으면서 사회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ㄱ씨는 최근 바리스타로 취업했다.

임의후견은 고령화 사회 노후를 대비하는 방안으로도 꼽힌다. 정신이 온전할 때 자신의 의사대로 계약 내용을 정할 수 있고, 후견인도 정할 수 있다. 또 반드시 후견감독인을 선임해야만 후견 사건이 개시되기 때문에 안전장치가 겹겹이다. 계약 절차도 비교적 간단하다. 공증 뒤 등기신고를 하면 된다. ㄱ씨 후견감독인을 맡은 이현곤 변호사는 “다른 성년후견 사건과 달리, 법원에선 후견 내용을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대로 후견 내용을 설계해둘 수 있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활용도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연간 신청 건수는 10건 안팎이고, 지난해 말까지 전국에서 임의후견 사건이 개시된 건수는 17건에 그쳤다. 성년·한정후견에 비해 일반인에게 생소하고, 편법적인 신청이 많아 기각률이 높다. 임의후견은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맺어야 하는데, 이미 질병이 나타난 상태에서 후견계약을 맺은 뒤 후견감독인 선임을 청구해버리면 계약이 피후견인 의사대로 맺어졌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엔 법원이 수억원 재산이 있는 70대 치매 노인의 성년후견인으로 친족이 아닌 제3자를 선임하자, 재산을 탐낸 아들이 나서 아버지가 자신과 가까운 친족과 임의후견을 맺도록 한 뒤 곧바로 후견심판 청구를 냈다가 법원에서 기각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노후 대비를 돕는 임의후견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피후견인이 자기 뜻에 따라 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계약 체결 시 피후견인에게 정신적 제약이 없다는 내용의 감정서를 준비해두면 법원의 ‘합리적 의심’을 피할 수 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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