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대법원이 채택 거부한 핵심 물증
트위터상 정치공작 내역 담은
‘지논 파일’과 ‘씨큐리티 파일’
요원의 자기 이메일에 첨부돼
업무지침인 ‘이슈와 논지’ 받아
일기쓰듯 매일 파일에 업데이트
대법원, “증거능력 없어” 배척
트위터상 정치공작 내역 담은
‘지논 파일’과 ‘씨큐리티 파일’
요원의 자기 이메일에 첨부돼
업무지침인 ‘이슈와 논지’ 받아
일기쓰듯 매일 파일에 업데이트
대법원, “증거능력 없어” 배척
대법원이 채택 거부한 핵심 물증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안보5팀에서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일을 하는 김기동은 2012년 12월12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 사무실에서 자신의 네이버 메일에 접속했다. 안보3팀의 김하영이 선거운동의 꼬리를 밟혀 서울 역삼동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셀프 감금’을 시작한 다음날이다. 김기동은 새로운 메일 메시지를 열어 ‘신의일’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여기에 ‘425 지논.txt’와 ‘ssecurity.txt’라는 두개의 파일을 첨부해서 자기 자신에게 보냈다. ‘신의일’이 무슨 뜻인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이 이메일은 이름과 비슷하게 ‘정의의 신이 한 일’이 됐다.
‘425 지논 파일’에는 5팀이 매일 진행했던 트위터에서의 정치 공작에 관한 업무 지침인 ‘주요 이슈와 대응 논지’가 들어 있다. 지논이란 말 자체가 논지를 거꾸로 쓴 것이다. 예를 들어 2012년 10월12일자 ‘이슈와 논지’ 중 <주말 확산> 부분에는 “북한 요구에 따라 NLL을 변경하면 아군 함정이 백령도 등 서해5도에 출입 허락을 받고 특정한 수로로만 다녀야 한다네요. NLL은 우리 해군이 피땀 흘려 사수한 안보사활선인데 정치적 협상을 통해 NLL을 건드리면 그간의 고귀한 희생은 어떻게 되나요”라는 글이 있다. 이 지침은 그날 밤 11시14분에 김기동의 계정 중 하나인 ‘youjung911’에서 “한다네요” 부분만 “한다”로 고쳐져 글이 띄워졌다.
4월25부터 12월5일까지 업데이트 ‘이슈와 논지’는 국정원장(원세훈)이 매월 전 부서장회의나 매일 오전 모닝브리핑에서 내린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4월20일 원세훈이 전 부서장회의에서 한 ‘여수 엑스포 홍보 강조 지시’가 “여수 엑스포에 가면 백조의 호수를 볼 수 있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중략) 여수 밤바다에 꼭 가보고 싶네요”라는 내용의 ‘이슈와 논지’(5월2일)로 나오는 식이다. “통상 하루에 이슈는 2~4개 정도 내려오고, 그에 대한 2~3줄 정도의 대응 논지가 전달됐다.”(장아무개의 검찰 진술)
김기동은 처음에는 ‘오25’(1월25일), ‘222 논지’(2월22일) 등 매일 파일을 새로 만들다가 4월25일부터는 ‘425 지논’ 파일로 단일화했다. 이 파일에 새로 내려오는 ‘이슈와 논지’를 업데이트했다. 12월5일이 마지막 내용이었다.
‘씨큐리티 파일’엔 팀원 22명(팀장 등 2명 제외)의 트위터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담겼다. 김기동의 것 30개를 포함해 트위터 계정 269개가 나왔다. 검찰은 이 기초 계정들과 연동해 움직인 트위트덱 연결계정 422개 등 모두 716개 계정을 찾아냈다. 이 계정에서 작성한 총 트위트 글이 2200만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불법적인 내용만 추린 게 121만건(법정에서는 27만4800건으로 줄어듦)에 이르렀다.
심리전단은 매일매일의 당번 계정이 글을 올리면 다른 계정은 이를 리트위트하는 식으로 운영했다. 위에서 예로 든 10월12일의 엔엘엘(NLL) 관련 트위트 글은 다음날부터 10월17일까지 다른 요원들의 계정에 의해 총 363회가 리트위트됐다. 이러한 팀플레이를 위해 동료들의 계정 아이디가 업무상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씨큐리티 파일에는 ‘1128 수내역 홀리’(11월28일 성남시 분당의 수내역 근처 홀리스 커피) 또는 ‘1205 금천 톰앤톰스’(12월5일 서울 금천구 톰앤톰스) 등 김기동이 트위터 공작을 실행했던 구체적인 내역도 적혀 있다. 같은 시간 및 장소에서 그의 전화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두 파일은 국정원이 트위터에서 실행한 정치 공작의 내용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스모킹건(결정적 물증)이다. 김기동은 검찰의 세차례 조사에서는 두 파일의 작성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그는 법정에서도 ‘그 이메일은 자신의 것이 맞고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두 파일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그럼에도 두 파일은 김기동 본인의 비밀번호로 관리하는 노트북과 이메일에서 나온 그의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더구나 이메일에 첨부한 두 파일의 내용도 다른 팀원들이 검찰 조사나 법정에서 한 여러 진술과 일치한다.
“기억 안 나” 발뺌에 두 손 드는 법원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두 파일의 내용 자체를 김기동이 직접 타이핑한 것은 아닐지라도 국정원의 상관이나 동료가 만든 자료를 받아서 모아둔 것은 틀림없다. 2심 재판부(부장판사 김상환)가 ‘업무용으로 작성된 통상 문서’라며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살려낸 것은 이런 논리에서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업무 관련 내용이 실제로 업무 수행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된 것인지를 알기도 어렵고, 다른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메일 계정에서는 두 파일과 같은 형태의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통상 문서가 아니라며 증거에서 뺐다.
대법관 13명 전원일치로 내린 판단을 파기환송심(부장판사 김대웅)에서 뒤집을 수 있을까. 판사 출신의 박아무개 변호사는 “법리적으로는 복잡한 문제”라면서도 “분명한 논리와 용기가 있다면 상급심의 판단을 다시 번복하는 것은 가능하고 그런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두 파일이 국정원 불법행위를 단죄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지 아니면 범죄자들이 법을 기망할 수 있는 주요 사례가 될지는 ‘신의 일’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일’에 달렸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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