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덜 익은 고기 패티가 원인” 주장
맥도날드는 “원인 불명…조사 협조하겠다”
외국에선 햄버거 패티 피해 사례 잇따라
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ㄱ양의 어머니 최은주씨가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고기 패티가 덜 익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렸다며 ㄱ(4)양의 가족이 맥도날드 한국지사를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습니다. ㄱ양은 지난해 9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뒤 복통을 호소했고, 설사에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져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진단명은 용혈성요독증후군이었습니다. 한 때 심장 정지 상태까지 갈 정도로 위독했다고 합니다. ㄱ양은 현재 신장이 90% 손상돼 하루 10시간씩 배에 뚫은 구멍을 통해 복막투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장장애 2급을 판정 받았고,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일명 ‘햄버거병’이라고 불립니다. 이 생소한 질환이 높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환자 절반이 완치가 불가능할 정도로 무서운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치명적 질환이 우리 삶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에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햄버거병은 사실 외국에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수천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매년 피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햄버거를 먹고 관련 질환에 걸린 피해자들이 햄버거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다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햄버거병 논란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까요? 맥도날드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일까요?
■ ‘햄버거병’이라는 희귀 질환은 무엇?
단기간에 신장 기능을 망가뜨리는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 중에서 가장 심한 증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장이 불순물을 걸러주지 못하면서 몸에 독이 쌓이면서 발생하는데요. 감염되면 심한 설사와 구토, 복부 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경련이나 혼수 상태 등 신경계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로 멸균되지 않은 우유 혹은 균에 오염된 식품을 먹거나 특정 대장균에 감염된 소고기를 충분히 익혀 먹지 않았을 때 발병합니다.
이 질환이 햄버거병으로 불리는 이유는 햄버거를 통해서 감염된 사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질환을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주로 노인이나 어린이에게 발생합니다. 유전으로 드물게 발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ㄱ양의 부모도, 원인을 찾고자 유전자 검사를 받아봤지만 유전적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ㄱ양 쪽에서는 “햄버거 속 덜 익힌 고기 패티가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애초 맥도날드는 ‘원인 불명’ 등의 이유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커지자 뒤늦게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고기 패티는 사람이 굽는 게 아니라, 기계 시스템으로 굽기 때문에 고기 상태는 일률적일 수밖에 없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덜 익은 패티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햄버거병’을 집단 발병시켰던 햄버거 프랜차이즈 ‘잭인더박스’. 사진 잭인더박스 페이스북
■ 햄버거병 원인이 ‘패티’임을 가리키는 사례들
피해자 쪽의 주장이 억측이 아니라는 점은 해외 사례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1982년 미국에서는 햄버거병 집단 발병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햄버거 속 덜 익힌 고기 패티가 원인이었는데요. 이어진 후속 연구에 의해 ‘O157 대장균(E. coli O157)’이 원인이었음이 밝혀졌고, 이 균에 감염된 소고기를 패티로 사용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 실제로 O157 대장균은 미국에서 어린이들의 신장 질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피해자 쪽 법률대리인의 조사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2000년에는 위스콘신주에 있는 한 햄버거 매장에서 다수가 장염에 걸렸던 사건이 있었는데요. 4명이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렸고, 그 중 3세 아동이 사망했습니다. 회사는 155억원에 합의를 했다고 합니다. 한편, 햄버거병이 소송으로 번졌지만, 법원으로부터 외면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2006년 8월 미국의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웬디스를 상대로 용혈성요독증후군 진단을 받은 57세의 여성이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뚜렷한 원인이 입증되지 않아 미국 연방법원에 의해 기각되고 말았습니다. 햄버거병의 원인을 둘러싼 각종 설들이 공론화 된 첫 공식 재판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던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O157 대장균은 지금과 같은 가축 사육과 도살 환경에서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2008년 로버트 컨너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푸드 주식회사>를 보면, O157 대장균이 햄버거 패티 등을 통해 확산되는 과정이 잘 나옵니다. 동물들은 자기 배설물이 발목까지 쌓인 사육환경에서 하루 종일 서 있는데, 이때 이 대장균에 가축들이 노출되게 된다는 겁니다. 도축과정에서 가축에 묻은 배설물 등 이물질이 함께 고기에 섞이게 되 고, 이런 고기가 햄버거 패티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햄버거병의 원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맥도날드 쪽에서는 보험금 접수를 위해 원인이 명확히 써 있는 진단서를 피해자 쪽에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단서에 발병 요인으로 햄버거가 명시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피해자 쪽에서는 이 질환의 전형적인 감염 경로가 햄버거 등 장출혈성대장균에 감염된 음식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햄버거 패티를 굽는 기계에 대한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계가 정해진 온도·시간 등에 따라 일률적으로 패티를 굽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릴 사이에 패티를 채워넣는 간격 등에 따라 패티가 익는 상태가 다를 수 있다고 합니다. 피해자 쪽 법률대리인 황다연 변호사는 “맥도날드가 패티가 덜 익을 가능성을 알고 내부자료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임에도 이를 부인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맥도날드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맥도날드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는 누리꾼들도 많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왜 햄버거병이겠냐, 맥도날드는 조사 성실하게 받아라”(하그*****), “맥도날드 고객이 몇 명인데, 양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거 아님?”(돌타*****), “지금 맥도날드 태도 분명히 기억한다 원인 햄버거로 밝혀지면 어떻게 하나 지켜본다”(gho******)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ㄱ양이 앓고 있는 이 질환이 왜 햄버거병으로 불리는지를 잘 생각해보면,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기 전까지 ㄱ양은 활발하게 뛰어놀던 건강한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왔던 맥도날드가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기를 바란다”며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인데요. 맥도날드의 향후 행보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유덕관 기자 yd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