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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산재 여부, 당사자 입장에서 판단해 주세요”

등록 2017-06-26 18:18수정 2017-06-27 09:06

[밥&법] 죽음, 정신질환 그리고 업무상 재해
근로복지공단, 산재 인정 까다로워
“스트레스, 죽을 만큼 과도하지 않다”
“일반 직장인은 견딜 수 있는 정도”
폭넓게 인정하는 법원도 잣대 엇갈려
전문가 “자살 당사자 처지 살펴야”
5월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5월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자살도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는 업무상 사유에 따른 노동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뜻한다. 따라서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으려면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산재보험법 37조 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나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것이다. 다만 같은 조항에서 ‘그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산재보험법 시행령 36조는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를 했다는 게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등을 업무상 재해로 보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근로복지공단이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사례는 유가족의 신청 190건 중 59건(31.1%)에 불과했다. 공단 통계를 보면, 공단의 업무상 재해 불인정에 불복해 유족이 소송으로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 확정판결을 받아낸 사례는 2010~2016년 13건이었다. 이들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은 “개인적 요인이 더 크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 “스트레스 내용이 자살을 유발할 정도로 과도하지 않다” 등의 이유로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권동희 노무사(법률사무소 새날)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자살 사건을 심의할 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의학적 판단은 아무래도 업무상 구조적인 문제보다, 노동자 개인의 문제에 집중해서 보는 한계가 있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법원은 이런 의학적 판단보다 사회적·규범적 기준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자살의 업무상 재해를 근로복지공단보다는 폭넓게 인정하는 편이다. 대법원 판례는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로써 판단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업무와 자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로 인해 심신상실 등의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경우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원도 자살과 업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회 평균인’인지 ‘당사자’인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을 낳고 있다. 대법원은 1991년부터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판례를 여러 차례 내놓았다. 그런데 2008년 대법원은 자살 사건에서 “자살이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8년 판례에 따라 하급심에서는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자살할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며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판결에 대해 정작 대법원이 ‘개인 특성’을 더 고려하라는 취지로 파기한 사례도 2015년 확인된 것만 6건이다. 권 노무사는 “대법원이 자살과 업무의 인과관계의 기준을 ‘사회 평균인’인지 ‘당사자’인지 명확하게 하지 않아 혼돈이 초래되고 있다. 다른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과 마찬가지로 자살 사건도 ‘당사자’의 처지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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