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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래픽뉴스] 청문회 최다 단골, ‘위장전입’을 어이할꼬

등록 2017-06-07 09:28수정 2017-06-07 10:11

인사청문회 단골 메뉴인 ‘위장전입’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특정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태어나면 거주지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주민등록법 6조·10조). 실제 거주하지 않으면서 주소를 옮기는 것은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하지만 법 위반을 적발하기 어렵고 처벌 또한 솜방망이 취급을 받으면서 위장전입은 은밀하게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가장 빈번한 의혹 중의 하나로 제기되는 위장전입에 대해 정리했다.

지난 2009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회원들이 서울 명동 거리에서 ‘No! 위장전입. 1만명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 1980년대 이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위장전입’이란 용어엔, 실거주지에서 주민등록을 하지 않는 행위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 등 다양한 나쁜 행위들까지 광범위하게 담겨있다. 연합뉴스
지난 2009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회원들이 서울 명동 거리에서 ‘No! 위장전입. 1만명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 1980년대 이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위장전입’이란 용어엔, 실거주지에서 주민등록을 하지 않는 행위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 등 다양한 나쁜 행위들까지 광범위하게 담겨있다. 연합뉴스

■ 주민등록법에는 없는 단어 ‘위장전입’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위반이지만 법에는 ‘위장전입’이란 단어가 없다. ‘거짓의 사실을 신고’(제37조 3항)라는 표현이 위장전입을 대신한다. 행정자치부 주민과 관계자는 “전입 신고한 주소에서 살고 있느냐 않느냐만 확인할 뿐 ‘거짓의 사실’에 대한 것은 법에서 구분하지 않고 있다”면서 “따라서 (위장전입) 사유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단어는 없으나 주소를 거짓 신고하는 위장전입은 명백히 법 위반이다. 외국인을 제외한 ‘주민’들은 30일 이상 거주 목적으로 사는 주소를 시·군·구 관할구역에 등록해야 한다. 주소를 옮길 시 14일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주민등록을 이중으로 하거나 거짓 신고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제37조 3의2)에 처한다.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주민등록법은 형식상으로는 인구 변동을 살피고 복지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실거주지가 아닌 곳에 주민등록을 하는 사람은 ‘수상하다’고 여겨졌고, 부동산 투기 같은 불법과 편법을 저지른 사람으로도 간주했다. 1975년 7월 내무부의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보도한 <동아일보>(6월19일치)를 보면 “주민등록과 실제 거주를 일치시키면 간첩 색출, 강력범 등 범인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개정 취지를 소개하고 있다.(▶관련기사 : 위장전입 처벌 근거 ‘주민등록법’은 실효성 있나)

그렇다면 등록된 주소에 살지 않아 처벌받은 경우는 얼마나 될까. 행자부 관계자는 “주민 편익과 행정사무 적정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규제를 무리하게 적용하기보다는 거짓 신고를 발견할 경우 바로잡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거짓 신고로 적발됐다고 모두 고발처리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신고하도록 최고(직접 알려줌), 공고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도 제대로 신고하지 않으면 고발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적발 건수는 따로 집계하지 않고, 고발 건수만 확인이 가능하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195명이 전입신고를 거짓으로 해 고발당했다. 2015년엔 209명, 2014년에는 138명이었다. 10년 전인 2007년엔 90건에 불과했다. 고발된 위장전입자들은 경찰 수사를 거쳐 처벌 받는다. 위장전입의 공소시효는 위장전입을 한 날부터 5년이다.

2011년 7월21일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박영선 당 정책위의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위장전입 의혹이 있는 인사들의 목록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1년 7월21일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박영선 당 정책위의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위장전입 의혹이 있는 인사들의 목록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위장전입, 그들만의 사정

위장전입의 대표적 목적은 자녀 교육과 자산 증식이다. 위장전입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시기는 고교 평준화가 본격화되고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땅값이 상승한 1980년대다. 고교 배정 기준이 거주지 중심으로 바뀌면서 서울 강남 지역에 사는 학생만 교육환경이 좋은 강남 고교(‘8학군’)로 입학하게 되자 이 지역으로 허위 전입자가 몰렸다. 과밀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전두환 정권은 ‘위장전입 학생’ 색출에 나서기도 했다. 부동산 활황기이기도 했던 이 시기에 아파트 분양과 임대주택 입주 조건으로 해당 지역 거주자가 1순위 청약을 받도록 규정하면서 위장전입이 많았다. 재개발 지역 분양권을 따거나 청약가점제에서 최대 가점을 받을 수 있는 ‘부양가족 수’ 요건 등을 채우기 위한 위장전입도 빈번했다. 지금은 사라진 규제지만 농지를 살 때는 해당 거주지에 일정 기간 살아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주소를 이전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주민등록을 옮기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극심한 취업난에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이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은 지방직 응시를 위해 주소를 이전하기도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처럼 해외 거주자들이 우편물을 받기 위해 주소를 허위로 등록한 것을 두고도 위장전입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 “땅을 사랑”한 후보자는 ‘낙마’, 자녀 진학 목적은 ‘통과’

위장전입 문제로 낙마한 최초의 고위공직자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사퇴한 주양자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주 전 장관은 일가족이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16차례에 걸쳐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밝혀져 취임 58일 만에 사퇴했다. 2002년 첫 여성 국무총리가 될 뻔했던 장상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의혹이 일면서 인준 투표가 부결돼 낙마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인이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 거래로 수십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이 제기돼 사퇴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위장전입 논란이 가장 많았다. 2008년 대통령 본인부터 자녀들의 진학 문제로 위장전입 의혹이 5차례나 불거졌다. 부동산 투기 의혹에 “땅을 너무 사랑해서”라고 답했던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다른 의혹들까지 덧붙어 결국 낙마했다. 거의 모든 인사대상자가 위장전입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보니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봐주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5번의 위장전입 의혹을 받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딸이 왕따를 당해 학교를 옮기느라 위장전입을 했다”고 해명했다가 비판 속에 끝내 낙마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위장전입은 여전했다. 2015년 3월에는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 등이 위장전입 의혹에 휩싸였지만 결국 4명 모두 검증과정을 통과했다.

자녀 진학 문제로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7일 열린다. 지난달 25일 강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 대우빌딩 사무실로 향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자녀 진학 문제로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7일 열린다. 지난달 25일 강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 대우빌딩 사무실로 향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위장전입 기준을 새롭게 세워야 할 때?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의 도덕성을 따지는 잣대로 활용됐다. 거주지 주소를 거짓으로 옮겨 이익과 특혜를 본 정황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 표절’ 5대 비리 관련자는 원칙적으로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낙연 국무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이 위장전입 논란에 부딪히자 지난달 청와대는 “현실적인 기준을 만들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정치권은 2000년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여당이냐, 야당이냐 입장에 따라 공세를 펼쳐왔다. 야당일 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여당일 땐 “자녀 교육과 투기 목적의 위장전입은 달리 봐야 한다”는 식이다. 위장전입을 흠결로 보는 시각은 그때그때 달랐다.

주민등록법이 애초 통제의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거주 이전의 자유와 맞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위장전입 자체는 처벌하지 않도록 주민등록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장전입을 “구시대의 유물 같은 국가주의적 용어”라며 주민등록법을 비판했다. 부동산 투기와 자녀 진학 목적으로 이뤄지는 위장전입이 만행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주소를 옮겨 부동산 투기를 했다면 부동산 투기 관련법으로 처벌하면 되고,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살지도 않는 곳에 주민등록을 했다면 교육 관련법을 강화해 처벌하면 된다. 주민등록을 어디에 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주민등록을 하여 어떤 법률을 어떻게 위반하였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7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 위장전입 논란이 가장 뜨거운 고위공직자다. 강 후보자는 자녀 진학 문제로 위장전입을 했다고 이미 시인했다. 그는 과연 청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rkdalswls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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