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호 변호사가 보기에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만 하면 정보를 묻고 얻을 수 있는 정보공개청구는 접근성이 가장 높은 주권운동이다. 송 변호사가 19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부근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정보공개청구만 1000번 넘게 한 변호사. 한-일 ‘위안부’ 합의문서 일부, 론스타의 과세 피해액 규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문서…. 국내 최고의 통상 전문 변호사로 꼽히는 송기호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 손을 거쳐 공개된 대표적 정보들이다. ‘세월호 7시간’ 30년 봉인 사실도 국내 10년차 정보공개청구 전문가의 관록 덕에 세상에 알려졌다.
파면과 함께 껍데기만 남았다. 지난 10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청와대엔 빈 깡통만 가득했다. 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수인계된 서류는 10여쪽 얇디얇은 보고서가 전부.
시계추를 돌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한달여 뒤인 4월17일로 가보자.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가 4년 남짓한 기간에 생산한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고, 그중 일부를 최장 30년간 볼 수 없는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만들기 시작했다. 30년은 기억하기에 버겁고 바로잡기에 뒤늦은 세월이다. 봉인이 예정된 기록엔 ‘세월호 7시간’과 한-일 ‘위안부’ 협상 관련 문서가 포함됐다.
이런 사실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국제통상위원장인 송기호(54·사법연수원 30기) 변호사가 청와대와 국가기록원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비서실 보고서 등을 공개하라고 했더니 ‘대통령기록물관리법 17조에 의해 비공개한다’는 답변이 오더군요. 이 조항은 기록을 봉인했을 때 적용되는 조항이에요. ‘봉인행위’라는 정보가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거죠. 정말 기록물이 국가기록원에 넘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정보공개청구를 한 거죠.”
답변서를 보고 다음 수를 고민하는 것은 10년차 정보공개청구 전문가의 관록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문서, 론스타의 과세 피해액,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문서…. 전문가가 아닌 이들에겐 문턱이 높은 분야에서 공개된 정보는 상당 부분 송 변호사의 손때를 탔다. 정보공개청구만 1000번 넘게 한 변호사다.
범법을 비밀로 옹호하는 공권력
19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부근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송 변호사는 한주간 누적된 정보공개청구 답변 현황을 점검하는 데 한창이었다. “방금 환경부에서 답이 왔어요. 사드 포대 배치사업 환경영향평가를 위해 제출받은 평가서가 없다네요.” 전문용어에 길을 잃은 기자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예의 친절한 설명이 뒤따랐다. “지난달 사드를 배치하기 전에 전자파가 인체에 해로운지 확인하는 절차도 안 거쳤다는 거예요. 졸속 결정이죠.” 인터뷰가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송 변호사는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 누리집이 띄워져 있는 컴퓨터 화면을 수차례 눈으로 훔쳤다.
“간단히 말해 정보를 공개하거나 비공개하거나 둘 중 하나죠. 한데 비공개 처분도 그 자체로 하나의 정보예요. 정보공개법은 왜 비공개하는지 사유를 적시하게 돼 있거든요. 비공개 처분 땐 이의신청도 할 수 있어요.”
정보공개청구와 동시에, 정보 제공에 소극적인 행정기관과 허점을 파고드는 송 변호사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그는 한 사안에 대해서도 범위를 좁혀가며 20~30차례씩 정보를 요청한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집요해야 하죠.” 정보공개포털 누리집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한계에 봉착하면 그는 다음 패를 만지작거린다. 정보공개를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달란 소송을 법원에 낼지 고민하는 것이다.
법률가인 그도 소송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다. 하지만 행정기관이 정보공개청구에 구색 맞추기 식 답변을 내놓을 때 온라인에서 주고받는 ‘우아한’ 냉전은 끝을 맺는다. 첫 소송의 기억은 2009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한창일 때였다. ‘외국산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허위로 속여서 판매한 식당 이름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에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는 ‘식당의 영업비밀’을 이유로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범법행위를 ‘영업비밀’로 옹호하는 공권력의 논리 앞에 송 변호사는 아연실색했다. 행정정보 공개 소송이란 이름의 소장은 그때 처음 작성됐다.
“법정에서 판사가 호통을 치더군요. ‘식당을 이용하는 국민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인데, 왜 공개하지 않아서 소송까지 당하느냐. 소비자인 나도 알아야겠다’고 하더군요.”
결국 쇠고기 원산지를 속여 팔다 적발된 식당과 예식장, 어린이집과 장례식장 704곳의 정보가 공개됐다. 농산물품질관리법을 어긴 업체 이름을 누리집에 공개하는 법 개정안도 만들어졌다. 소비자의 알 권리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낸 첫 정보공개 소송에서 시원한 승리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모든 정보공개청구가 성취감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정보공개청구 활동은 행정기관의 무심함이나 꼼수와 싸우는 지난한 과정이다. 비공개 처분 땐 청구인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정보공개법 조항을 우회하기 위해, ‘공개 처분’이라고 통보하면서도 내용은 깡통인 경우도 있다. 10년간 단련된 송 변호사도 요령이 생겼다. 처음부터 정보의 범위를 좁혀서 청구한다. 비공개할 수 있는 사유를 최대한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가령 사드 관련 정보공개청구를 할 때도 ‘(청구 정보에) 사드의 효용 자체에 대한 기밀은 제외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처음엔 청구의 ‘저의’를 궁금해하는 공무원들이 많았죠. 전화로 ‘도대체 왜 이런 정보를 원하느냐’, ‘목적이 뭐냐’는 질문을 숱하게 하더군요. 그런데 정보공개법은 청구의 목적을 묻지 않도록 돼 있거든요. 국민이라면 누구나 갖는 권리라는 걸 설명하는 데 몇 년 걸렸죠.”
정보공개청구 10년차, 송 변호사는 어느새 ‘파이터’가 됐다.
농민들을 배제하는 농림부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남 고흥에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고, 대학 졸업 뒤 3~4년간 임차농으로 살기도 했다. 객지에서 남의 땅을 빌려 농업 노동자로 사는 건 순탄치 못했다. 끝내 실패한 농촌생활을 뒤로하고 그는 늦깎이 변호사가 돼 로펌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를 가장 절실하게 찾은 것은 결국 농민들이었다고 송 변호사는 말한다.
2002년 중국산 마늘 수입이 늘어나 피해를 본 농민들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에서 거절했다. 발을 동동 구르는 농민들을 대리해, 송 변호사는 세이프가드 연장 소송에 나섰다. 농민들을 달래느라 마늘을 같이 팔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과거 중국산 마늘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실이 드러났다. 높디높고 단단한 정보 장벽을 깨달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농민들이 아무리 두드려도 관료들은 ‘농민들이 뭘 알아요. 세계무역기구(WTO) 가면 다 그래요’라고 한마디 하데요. ‘농민들은 무식해’란 태도가 밑바탕에 있고, 전문 용어를 쓰면서 농민들을 배제하는 거죠. 농업통상이 항상 이런 식이에요.”
정보공개청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관료들의 정보 독점에 ‘손가락 주권운동’으로 대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송 변호사가 보기에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만 하면 정보를 묻고 얻을 수 있는 정보공개청구는 접근성이 가장 높은 주권운동이다.
통상문제에 집중하니 자연스레 외교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합의 없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과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합의를 했다. 지역 주민의 반대는 뒤로한 채 사드 ‘알 박기’가 강행됐다. 지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반복된 이런 참사를 송기호 변호사는 ‘외교 적폐’라고 했다.
“졸속 협정, 합의 과정을 밝히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비공개 처분과 함께 ‘국제 신인도를 저하시킬 수 있다’, ‘상대국과의 신뢰 관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와요. 말만 ‘정보공개 2.0’이지 사실 공개된 건 하나도 없죠.”
지난 9년간 송 변호사는 자연스레 법원을 찾는 횟수가 잦아졌다. 정보 비공개 처분이 많아지니 마지막 수단은 소송이었다. 소송에서도 지면 법원이 행정부의 비공개를 합리화시켜줄 수 있다는 두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재판부의 태도가 정말 중요해요. 재판부는 ‘비공개 열람’을 통해 군사기밀, 외교기밀도 볼 수 있거든요. 외교 사안의 경우 재판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제대로 된 정보가 공유되죠. 시민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에 대한 기준을 법원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교두보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단비 같은 순간은 드물게, 그러나 끝내 찾아왔다. 올해 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정숙)는 “12·28 합의 과정에서 ‘위안부 강제연행’ 문제와 관련해 협의한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을 받아든 송 변호사는 옅은 탄식을 내뱉었다.
“정보 비공개로 보호되는 국가의 이익은 국민의 알 권리보다 크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채무의식을 갖고 있다. 일본 정부가 어떤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등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
법정에서 제기한 송 변호사의 주장이 고스란히 인용됐다. 심지어 송 변호사가 주장하지 않은 내용까지 판결문에 담겼다. “피해자들이 모두 고령으로 생존자가 40명에 불과하므로 30년이 지나 공개된다 해도 피해자들이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30년 뒤에 외교문서 공개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보를 공개할 수도 있다는 외교부 주장을 재판부가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외교부는 즉각 항소했지만, 다음달 1일 항소심 첫 변론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도 항소이유서를 내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송 변호사는 그가 남긴 외교 적폐에 맞서 여전히 싸우고 있다.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준비위원장(당시)이 2011년 5월3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여야 합의사항은 국제법상 실효성이 없으므로, 협정 발효 전 학교급식에서 우리 농산물 우선 사용 등의 원포인트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사람이라도 더…
송 변호사는 정보공개청구 대중화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첫 출발은 지역주민운동. 유기농 식품 안전에 관심이 많은 송파구 내 생활협동조합(생협) 조합원들과 함께 아이들의 건강을 주제로 정보공개를 청구할 계획이다. 민변이나 다른 변호사들이 아닌 지역 주민들과 함께 정보공개청구를 한 경험도 한 차례 있다. 2005년 학교급식 식판 식기세척기에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판단해 보건복지부에 식기세척제에 포함해도 되는 화학물질의 기준을 공개하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자녀의 건강을 우려한 학부모들이 손을 보탰고, 보건복지부 법령 변경으로 이어졌다.
“단 한 사람의 소비자라도 식품 정보 공개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잘못된 식품체계를 고쳐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바른 학교급식을 요구할 수 있다. 급식은 교장이나 영양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 사람들이 함께 한다. (…) 이런 자치의 공간이 자꾸자꾸 넓어지면 낡은 체계는 결국 무너진다.” 송 변호사가 120여 차례의 정보공개청구 경험을 모아 2010년 펴낸 <맛있는 식품법 혁명>에서 한 말이다. 그가 무너뜨릴 또하나의 적폐는 무엇일까. 정보공개청구를 ‘손가락 주권운동’이라 믿는 송 변호사의 손가락에 자꾸만 눈이 간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