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 틱!… 벅! 버벅!… 니아옹.”
또 아침인가보다. 아마 6시반쯤? 이르면 5시쯤일 수도, 늦으면 7시가 다 되었을 수도 있겠다. 보들이가 오늘도 어김없이 방문을 긁는 소리다.
라미가 오고 두달 뒤 보들이가 온 직후부터 잠잘 땐 고양이들과 각방을 썼다. 쟤들이 뒤척이면 내가 깨고, 내가 뒤척이면 쟤들이 깨는 통에 밤새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려웠다. 볼일을 본 뒤 가끔씩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테러’도 걱정이었다. 그래서 밤엔 거실에다 재웠는데 언제부턴가 보들이가 새벽마다 낑낑대며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밤이 짧아지면서 시작됐으니 놀아달란 얘기였다. 지들은 일어났다 이거지.
거실에 나가 30분쯤 앉아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냥 방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그랬더니 침대를 오르락내리락, 창틀에 뛰어오르고 아주 난리였다. 아, 배신자들. 전날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조용히 잔다 싶으면 더했다.
냥이들과 함께 살면서, 호기심 많은 라미 덕분에 5첩 반상을 포기했고, 아침잠 없는 보들이 덕분에 늦잠을 포기했다. 백번 양보해서, 출근해야 하는 날에야 깨워주니 고맙다고 치지만 평일과 주말이 따로 없는 냥이들에게 “토요일이잖니. 좀 자자”고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냥이들과의 공동생활 최대의 피해자는 함께 사는 식물들이었다. 털 고르기를 하면서 삼킨 헤어볼을 토해낼 때 도움을 준다는 고양이풀엔 관심도 없더니, 멀쩡한 다육식물들 잎은 어찌 그리 물어뜯는지. 보들이가 ‘해먹은’ 다육이 하나는 지금도 시들시들 힘겹게 생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다육이들을 한곳으로 모았고 그 위에 철망을 둘렀다. 그 철망을 걷었다 씌웠다 하기 귀찮아지면서, 안 그래도 잘 주지 않던 물 주기 횟수는 더 줄었다.
반찬과 아침잠과 식물과의 공생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런 깨알 같은 얘기는 어떤 집사들도 하지 않았었다. 물론 고양이를 키우기 전 ‘콩깍지’가 씌었던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게 맞는 얘기겠지만.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이런 상황들에 적응이 돼 갔다. 선배 집사들의 충고를 따라 방문 밖 보들이의 ‘도발’을 단호하게 외면하자 문을 긁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문 긁는 소리도 익숙해지니 또 견딜 만했고 어느 토요일엔 정말 일찍 일어난 덕분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조조영화를 보기도 했다.
사실, 보들이가 문을 긁는 것도 낮에 함께 놀아줄 사람이 없어 내내 잠만 자다 벌어진 일이니 결국 집사의 업보였다. 이를 긍정적으로 승화하는 것도 집사의 업보였다.
배고픈 식물들은? 다행히 때마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이들 역시 베란다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고 비도 맞을 수 있었다. 그래도 먼저 만난 인연인데, 조금만 덜 게을러지기로 했다. 이네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욕심’부린 집사가 잘못이지.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