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꽉 찬 배터리도 쓰다 보면 점차 에너지가 고갈되듯, 나이가 들면 우리 몸도 쇠약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늙는 걸 두려워 한다. 그렇다면 젊을 때야말로 곧 인생 최고의 시기일까? 언뜻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인생의 여러 측면을 뜯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예컨대 신체 활력을 본다면 10대 청소년들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리적 안정면에선 나이 든 사람들이 훨씬 더 앞선다. 또 나이가 들어 영어 공부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건 뇌의 언어학습 능력은 어린 시절에 가장 왕성하다는 걸 뜻한다.
최근 미 인터넷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여러 분야에 걸쳐 각각 인생의 어느 시기에 정점을 맞는지를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경우, 인생의 정점은 중년기에 찾아왔다. 그 중엔 주관적 설문을 토대로 하거나 미국 사회에 특유한 것이어서 객관성이 떨어지는 것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론 청춘이 흘러갔다고 해서 인생이 미끄러져 내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추려낸 21가지의 인생 정점기 중에서,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따로 추려내 소개한다.
1. 외국어 학습은 7살
7살 이후부터 외국어 습득력이 뚝 떨어진다. 뉴로사이언스
인간의 발달에는 최적의 시기가 있다. 이를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고 한다. 결정적 시기 가설에 따르면 언어를 배우는 데도 최적기가 있다. 1967년 미국의 에릭 레넨버그 교수가 주장했다. 그 시기가 바로 7~8세 무렵이라는 것.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에 도착한 시기가 늦을수록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정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 문법과 어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는 7살 이후부터였다.
언어학자들과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이 있는 주장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춘기에 들어가기 전, 즉 14살 이전에 외국어를 배우면 더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점은 대부분 인정한다고 한다. 사춘기 이후에는 외국어를 원어민과 같은 수준으로 습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순전히 언어 습득 능력과 관련한 것이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우선 순위를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즘 국내에선 조기 유학, 영어 유치원, 직장이 해외 연수 등이 성행하면서 아이들이 갈수록 어린 나이에 영어를 쓰는 환경에 젖어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혀가 너무 일찍 꼬여 “선생님”을 “셩쉥님”이라고 발음하는 등 정작 우리말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많아졌다고 한다. 모국어도 제대로 익히지 않은 때에 외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게 되면 둘 다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음을 잊지 말자.
2. 뇌 인지 능력은 18살
인지과학자들이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을 테스트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숫자-기호 바꿔쓰기’ 시험이다. 특정 숫자와 특정 기호를 짝지은 다음 일련의 숫자를 주고, 이 숫자를 그에 맞는 기호로 바꾸게 하는 시험이다. 2016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4만8천여명의 온라인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18살 청년들이 이 일을 가장 잘 수행했다.
3. 이름 기억력은 22살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경우, 상대방의 이름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기 일쑤다.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2살 전후에 이런 경우가 가장 적었다.
근력이 최고조에 이르는 때는 25살이다. 픽사베이
4. 신체 근력은 25살
근육의 힘은 25살에 가장 세다. 물론 그 이후 10~15년 동안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는 있다. 근력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쉽게 개선할 수 있는 특성이다.
5. 마라톤 최적기는 28살
50년에 걸친 마라토너들의 나이와 성적을 분석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2시간을 약간 웃도는 기록을 낸 마라토너들의 평균 나이는 28살이었다.
6. 뼈가 제일 튼튼한 때는 30살
뼈는 30살 무렵에 가장 단단하고 밀도도 높다. 이 시기에 최대 골질량(peak bone mass)에 도달한다. 물론 칼슘과 비타민D를 섭취하면 뼈를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론 30살 이후부터 약해지기 시작한다.
7. 새 얼굴 익히는 능력은 32살
1초 동안 낯선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 뒤 그 다음번에 그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실험한 결과, 32살 때 속도와 정확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름을 기억하기는 다소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22살 때가 최고인 이름 기억력은 정점을 지난 지 한참이나 지난 탓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업적을 쌓은 시기. 갈수록 조금씩 나이가 늦어지고는 있지만 40대에 집중돼 있다.http://www.nber.org
8. 과학적 대발견은 40살
전미경제조사국(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연구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 업적이 이뤄진 평균 나이는 40살이었다.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더라도 이 콘셉트는 유효하다고 한다. 즉 사람들은 중년기에 가장 뛰어난 활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9. 타인의 감정 이해력은 40~50대
과학자들이 약 1만명에게 눈 주위만을 잘라 오려낸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곤 사진 속의 인물이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단지 눈만 보고도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40~50대였다.
계산 능력의 정점기는 의외로 50살이다. 픽사베이
10. 계산 능력은 50살
계산법은 초등학교때 배운 것이지만, 계산 능력은 50살 때 정점에 이른다.
11. 어휘력은 60대 후반~70대 초반
객관식 어휘 시험 결과 60대 후반~70대 초반이 가장 높았다.
12. 갈등 해소력은 60살 이후
삶은 가장 좋은 교실이다. 한 심리학자 연구팀이 사람들에게 갈등에 관한 것을 읽도록 주문한 뒤, 그것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기, 변화 예상, 다양한 가능한 결과들에 대한 고려, 불확실성에 대한 인정, 타협 모색과 같은 특성들에 대한 반응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 대상자들 중 가장 나이 많은 그룹, 즉 60~90살 사이의 사람들이 다른 연령대보다 거의 모든 점에서 우수했다.
13. 심리적 안녕은 82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가능한 최상의 삶과 최악의 삶을 10단계의 사다리 그림 중에서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82~85살인 최연장자 그룹이 자신의 삶에 7을 줘, 응답자들중 가장 높은 단계를 기록했다.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연구 결과다.
나이 끝자리수가 9인 해에 큰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픽사베이
14. 큰 결정은 나이 끝자리수 9인 해에
우리는 보통 연령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할 때 10대, 20대, 30대 이런 식으로 10년 단위로 끊어 구분한다. 따라서 39세와 40세는 시간상으론 1년 차이지만, 심리적으론 10년의 간격이 있다. 40세부터는 새로운 10년의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29, 39, 49, 59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살펴본 연구자들은 이들이 좋든 나쁘든 삶에서 큰 변화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발견했다. 특히 불륜을 꿈꾸는 사람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 처음으로 마라톤을 하려는 사람들한테서 이런 경향이 심했다고 한다. 이것 역시 2014년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연구 결과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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