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장애를 앓는 이유진(가명·오른쪽)양이 22일 수요일 오후 전북 군산의 이모 아파트에서 오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군산/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주변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신나서 잠을 안 자나 봐요.”
몸을 잘 가누지 못하면서도 신이 난 표정의 유진이는 오빠 품에 안겨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평소 유진이는 하루 12시간 이상 잠을 잔다. 몸 상태가 안 좋은 날은 분유 먹는 시간을 빼놓고는 계속 잔다. 하지만 이날은 컨디션이 좋은지 하품을 하면서도 자지 않고 연신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넘어지길 반복했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을 수 없지만, 가족과 친척들 말고는 친구가 없는 유진이에게 사람이 많은 것은 신나는 일이다.
22일 수요일 오후 전북 군산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이유진(4·가명)양은 이름도 생소한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을 앓는 뇌병변장애 1급 환자다. 이 병은 소뇌 위치가 정상보다 밑으로 내려와, 척수액이 뇌로 가지 못하고 뇌의 빈 곳으로 들어가서 각종 질병과 기형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유진이는 걷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못한다. 발달도 멈춰 4살이지만 2살 정도에 머물러 있다. 뇌내 압력이 이미 높은 상태라 격렬하게 웃으면 뇌혈관이 터질 수 있어 ‘웃어도 죽는 질병’이란 무서운 별칭을 가지고 있다.
2013년 1월에 태어난 유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생후 5개월이 지나서도 목을 가누지 못했다. 생후 9개월이 된 어느 날엔 거품을 물면서 경기를 일으켰다. 간질 발작이었다. 이때부터 발작이 매주 한 번꼴로 일어났다.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보니 소뇌가 신경을 누르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성장이 진행된 뒤 생후 4년여가 된 지난해 말 전북 익산 원광대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에 더해 ‘척추 이분증’, ‘22번 3염색체증’도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매일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퇴행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유진이는 원광대병원에서 매주 한 번 30분씩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 전부다. 군산에서 병원이 있는 익산까지는 왕복 4시간 거리다. 버스를 2번 갈아타야 하는 버거운 여정이다.
간질은 유진이를 괴롭히는 가장 큰 질병이다. 인터뷰 다음 날인 23일 유진이는 심한 발작을 일으켜 일주일가량 입원해야 했다. 간질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가서 간질 예방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그나마 약 덕분에 1시간씩 이어지던 발작이 1분 정도로 줄었다.
다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삭이는 가래도 유진이에겐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물질’이다. 가래로 인한 중이염이 심해져 이제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유진이는 뒤에서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오는 4월 중이염 수술을 앞두고 있다. 결과는 장담하지 못한다. 가래 때문에 잠도 잘 자지 못한다. 가래가 찼을 때 흡입기를 이용해 제거해주지 않으면 호흡 곤란이 올 수 있어, 유진이 엄마는 매일 유진이 곁에서 선잠을 잔다.
유진이 아빠 이씨가 22일 수요일 오후 전북 군산의 이모 아파트에서 흡입기를 이용해 콧물과 가래를 제거하고 있다.군산/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유진이는 4살이 된 지금도 분유를 이유식과 섞어 먹는다. 몸에 힘이 없어 제대로 씹지 못하고, 소화기관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다.
유진이네 다섯 가족은 이모의 30평짜리 아파트에서 산다. 유진이 위로 오빠가 2명 있다. 이전에는 7년 동안 외삼촌이 소유한 17평짜리 주공아파트에서 월세 20만원을 내고 살았다. 하지만 지난해 외삼촌이 ‘다른 사람에게 월세를 주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으니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집을 비웠다. 대신 이모가 유진이 가족에게 거실과 방을 내줬다. 이모는 이혼한 뒤 고교 2학년 아들과 살고 있어 그나마 공간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 집에서도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유진이 아빠 이씨는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며 가족 생계를 꾸리고 있다. 이씨 한 달 수입은 160만원 정도다. 5인 가족 최저생계비 317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마저도 생활비로 70만원, 유진이 치료비로 50만원, 분윳값 20만원, 기저귀 비용 20만원으로 모두 나간다. 이 때문에 대부업체와 지인들에게 빌린 돈이 6000만원이다.
이씨는 전문대학교에서 조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식당에선 월 100만원 정도밖에 받을 수가 없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다. 2007년 지엠대우 군산공장에 자동차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에 취직했다. 여기서 프레스 기계에 손이 눌리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면서 산업재해 신청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4년 전 물량 감축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해고된 뒤 정부에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취직을 알선해줬다. 하지만 조선소에선 ‘장애로 힘을 쓰지 못한다’며 이씨를 거절했다.
이씨는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전기 배선일을 배우려고 단신으로 경기도로 올라갔다. 5년간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여관방 하나 빌려 4명이 먹고 자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결국 두 달 만에 다시 군산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가 발작을 일으키면 엄마는 병원에 가야 하고, 그 사이 나머지 두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씨가 일을 나가는 날은 한 달에 절반밖에 안 된다. 지난해 6월부터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협력사 절반이 문을 닫는 등 군산 지역경제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엔 두 달 동안 일거리가 끊겼다. 인력소를 돌아다니다 일을 구하지 못해 공원에서 시간을 죽이다 집에 들어가는 날은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유진이의 아빠 이재석(40·가명)씨는 “공사 현장에서 잘 보여야 다음에도 불러주시니까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시키는 대로 감사하면서 일을 하죠”라고 말했다.
부모가 유진이를 돌보느라 바빠 오빠 2명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첫째 오빠는 만 7살로 초등학교 1학년생, 둘째 오빠는 만 6살로 유치원생이다. 한때 첫째와 둘째 유치원 특별활동비 6개월 치가 밀려, 유진이가 받은 태아보험금으로 급히 막은 적도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오빠는 아파트 입구에 차려진 학습지 판매대를 구경하러 가자고 자주 조른다. 유진이 고모는 “첫째가 알고 싶은 게 많아요. 하지만 집에서 공부할만한 게 별로 없으니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설민석 강사의 역사 강의를 듣고는 저한테 ‘조선 건국을 누가 한 줄 아세요?’라고 묻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은 꾸준한 재활치료와 수술로 증상이 상당히 개선될 수 있다. 담당인 서울대병원 교수는 “수술과 물리치료를 잘 받으면 걸을 수도 있는 아이”라며 희망을 줬다. 문제는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고모는 “한 달 동안 입원해서 집중적으로 물리치료를 받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금액을 들으면 속상할 것 같아서 물어보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수술은 비용이 더 드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군산/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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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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