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떠오르는 걸 ‘자식이 올라온다’고 생각할 텐데, 그걸 못 보면 어쩌겠어요.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국가어업지도선 ‘무궁화 2호’를 이끄는 진이동(57·해양수산부 어업관리단) 선장은 지난 22일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7명을 태우고 인양 현장 1.7㎞ 인근까지 항해한 유일한 배다. 진 선장은 가족들이 인양 작업 현장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수시로 뱃머리를 움직였다.
애초엔 이날 오전에 시작된 시험인양만 보고,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오후에 본 인양이 결정되자, 23일 복귀 일정도 제쳐두고 해상에 머무르기로 했다. 이후, 세월호 선체가 반잠수식 선박으로 옮겨진 25일 오후까지 75시간. 진 선장과 선원들은 한마음으로 세월호 선체 인양 성공을 기원하며 가족들의 곁을 지켰다.
진 선장이 이끄는 ‘무궁화 2호’는 원래 서해에서 중국어선을 단속한다. 21일에도 충남 보령시 외연도 인근에서 평소처럼 업무를 하다가 서해어업관리단 단장으로부터 ‘세월호 인양 해역에 올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밤새 뱃길을 달려 22일 새벽 팽목항 인근 서항망에 도착했고, 미수습자 가족들을 태웠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3년 동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배에 있는 동안 가능하면 불편함이 없도록 해드리고 싶었는데, 숙식도 잘 안 되고 먹을 것도 부족했어요.”
진 선장과 선원들은 급한 대로 동거차도에서 라면 2박스를 샀다. 밥을 짓고 라면을 끓여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대접했다. 인양 과정을 지켜보는 가족들은 초조와 불안감에 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오른 23일 새벽을 떠올리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느님도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했어요.” 해역엔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같은 날 밤 10시께 비보가 날아들었다. 선체 좌현에 있던 램프가 열려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세월호 인양은 위기를 맞았다. 배에는 적막이 흘렀다. 가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선박 지도선 승선 생활만 26년째인 진 선장은 경험을 토대로 가족들을 위로했다. “램프 정도는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아니다. 노동력과 시간이 걸릴 뿐이고, 배를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인양 과정에서 절단된 세월호 램프가 침몰 원인을 규명할 중요한 증거물이 될 수 있어 논란으로 남아있지만, 진 선장은 “당시엔 선체 인양 여부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팽목항으로 회항을 앞둔 25일 오전, 가족들이 조타실로 찾아왔다. 진 선장과 선원들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하늘은 또 비를 뿌렸다. “학생들이 엄마가 (육지로 돌아) 가는 줄 알고 우는 가봐요. 하늘에서 눈물이 또 떨어지네요.” 진 선장의 한 마디에 조타실은 눈물바다가 됐다.
진 선장은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가족들의 고통이 뼛속까지 느껴졌다”면서 “다시는 숭고한 학생들의 희생이 없어야 하고, 하루빨리 미수습자들을 부모와 가족 품으로 보내드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이슈세월호 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