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2학년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양승진·고창석 선생님, 어린 혁규와 아빠 권재근씨, 그리고 이영숙씨. 10만(주최쪽 추산) 촛불이 모두 꺼진 광장에서 아직 세월호에 남겨진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이 불렸다. 다시 촛불을 밝히는 순간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걸고 노란 풍선이 무대 뒤로 떠올랐다. 스물한 번째 촛불집회의 ‘소등 퍼포먼스’는 아직 세월호에 남아있는 미수습자 아홉명이 온전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의 의미를 담았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21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무대뒤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글귀를 적은 현수막이 올라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은 멈추지 않는다’는 이름을 내건 21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 등 아직 멈출 수 없는 수많은 이유를 담은 손팻말과 구호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은 ‘세월호 미수습자의 온전한 수습’과 ‘세월호 진상규명’이었다. 같은 시간 전남 진도군 사고해역에서는 바지선과 분리된 세월호가 반잠수선에 놓이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뒤 한주를 거르고 모인 촛불시민들은 한마음으로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외쳤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21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참가자들이 촛불을 끄는 소등행사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무대에 오른 세월호 희생자 남지현양의 언니 남서현씨는 “밤공기가 점점 3년전 팽목에서 제 뺨을 스치던 바람과 비슷해 도망치고 싶어지는 하루하루”라고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요즘 제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지난 3년동안 온갖 비난과 유언비어로 세월호 인양을 막았던 언론이 이제 와서 가슴이 미어지는 척, 세월호 인양을 바라왔던 척 돌변하는 모습, 지금은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하는 척하는 해수부가 지난 3년 동안 가족들을 대했던 태도”라며 “이 공범들과 적폐를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앞으로 출범할 선체조사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여러분도 도와달라”며 울먹였다.
세월호 희생자 김건우군의 아버지 김광배씨도 “올라오는 세월호를 보면서 참사가 나고 꼭 한 달 만에 살기 위해, 탈출하기 위해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러진 채 발견된 아들에게 느꼈던 미안함이 떠올랐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한 달이었는데 미수습자 가족들은 그런 시간을 3년 동안 견뎠다”며 “우리 엄마·아빠들은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희생된 304명과 약속했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21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형상의 모형이 놓여져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활동을 이어갔다. 윤혜진(47)씨는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이 담긴 펼침막을 내걸고 세월호 천막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시민들과 함께 만든 애플리케이션 ‘세월호뉴스온’을 다른 촛불시민들에게 설명했다. 세월호와 관련된 뉴스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정리해 전달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윤씨는 “잊혀질까봐 우리라도 계속해서 세월호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며 “3년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며칠 만에 인양될 수 있는 것이었다니 황망한 마음까지 들었다. 오늘 오신 시민들도 미수습자 사진을 보면서 우시는 분들이 많았다. 다 같은 마음인 것 같다”고 세월호 인양을 지켜본 소감을 이야기했다.
함은세씨는 세월호 리본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자원활동에 나섰다. 함씨는 “인양이 너무 뒤늦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유가족들을 보면서, 내가 희생자였다면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 위에는 지난 2015년 민중총궐기에서 경찰 진압으로 숨진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도 올라왔다. 27일은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지 500일이 되는 날이다. 백도라지씨는 “박근혜를 탄핵시켰고 세월호도 3년 만에 올라왔다. 너무나도 늦은 감이 있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며 “아직 (아버지를 죽인) 강신명 전 청장과 살인 경찰들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와 정의가 바로설 것이라고 저는 믿는다”며 눈물을 훔쳤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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