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인 2009년 10월27일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경찰들에 에워싸인 채 총리실 관계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울지방경찰청이 서울시에서 발행한 <용산참사백서>에 일부 표현과 해석의 문제를 트집잡아 수정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한겨레>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지난달 8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숨졌던 비극적인 용산참사 8주기를 맞아 서울시가 지난 1월 발간한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 백서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경찰은 백서 내용 중 6곳에 대해서 서울중앙지법의 1심 판결문을 인용하면서 “이미 법원의 재판을 통해 확정된 사실과 상이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관계가 아닌 표현과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경찰은 “철거민들은 경찰의 신속한 진압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대목을 문제 삼았다. 당시 철거민들의 상황을 서술한 것인데, 수정 근거로 엉뚱하게 “판결문에선 불법행위로 인해 신속한 진압과 체포가 필요한 상황이었음을 인정했다”는 부분을 들었다. 또 백서에서 경찰이 진압 당시 계단과 옥상으로 동시에 진입한 것을 두고 “이런 퇴로 없는 진압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들에 의해 과잉진압이라는 비판의 논거가 되었다”고 적은 것도 문제삼았다. 실제 변호인들의 비판이 있었음에도 경찰은 법원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정작 백서 집필 과정에서 서울연구원이 용산참사와 관련 있는 경찰 관계자 인터뷰를 2차례 요청했지만 경찰은 거절했다. 한 경찰청 간부는 “경찰 정보부서에서 백서 발간 전에 협조를 하면 서울시가 ‘경찰과 협조해 발간했다’는 문구가 들어갈 수 있으니 가만히 있자고 했다”면서 “본청에선 팩트는 (판결문과 백서가)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서울청에서 판단해서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민갑룡 서울경찰청 차장은 “판결문에선 관련자를 다 조사하고 엄격하게 심사한 증거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정리하기 때문에, 판결문과 다른 부분은 수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백서 검증에 참여한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 위원회’의 김덕진 위원(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은 “경찰이 발간 과정에선 협조하지 않다가 정작 백서가 나오니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지엽적인 부분에 문제를 제기해서 백서의 신뢰성을 흔들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백서 집필을 맡은 서울연구원 쪽에서 반영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라고 답변을 주셨다. 시의 최종 입장을 정해 다음주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김지훈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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