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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덕기자 덕질기 2] 한 대도 안 맞고 때리고만 싶다. 사드처럼 / 권혁철

등록 2017-03-15 18:09수정 2017-03-15 21:00

권혁철
지역에디터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내 주먹으로 상대를 때리면 이기는 게 권투다. 내가 2년 동안 권투를 해보니 피하기도 때리기도 모두 어렵다. 특히 스파링에서 상대 주먹에 맞아 몇차례 입술이 터진 뒤 ‘어떻게 하면 안 맞느냐’가 한동안 나의 화두가 됐다.

내가 찾은 ‘안 맞기 비결’은 3가지다. 먼저 동체시력을 키워야 한다. 동체시력은 상대 움직임을 헤아리는 몸의 반응속도다. 주먹을 보고 피하면 늦다. 권투 선수는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 공격을 피한다. 보통 사람의 반응속도는 빨라야 0.2초 정도인데, 뛰어난 권투 선수들은 0.16초 안팎이라고 한다. 동체시력을 키우려고 샤워할 때 물줄기 속에서 눈을 부릅뜨는 권투 선수도 있다. 주먹 앞에 눈을 감으려는 공포심을 억제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끝까지 주시하기 위해서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하다 보니, 눈을 감지는 않게 됐다. 하지만 순발력이 떨어져 주먹을 피하긴 어렵다. 결국 눈 뜨고 맞는 꼴이다. 어차피 맞는 거라면 차라리 눈 감고 맞는 게 잠시 속이라도 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음으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서 있으면 두들겨 맞는다. 권투에는 ‘발로 때리고 발로 막아라’는 말이 있다. 빠르게 공격하러 들어갔다 잽싸게 빠져나와야 한다. 무하마드 알리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호언장담을 뒷받침한 것은 경쾌한 ‘발’(풋워크)이었다. 권투는 9할이 풋워크이고 나머지 1할은 그 발놀림에 주먹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하느냐에 달렸다고들 한다.

오른손 스트레이트로 샌드백을 치고 있다.
오른손 스트레이트로 샌드백을 치고 있다.
권투 장갑을 끼기 전 손목을 보호하는 밴디지(붕대)를 손에 감고 있다.
권투 장갑을 끼기 전 손목을 보호하는 밴디지(붕대)를 손에 감고 있다.
마지막으로 반격을 해야 한다. 상대의 주먹을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말이다. 상대의 틈새를 노려 카운터펀치를 던져야 한다.

나는 여전히 상대 주먹을 보고도 못 피한다. ‘안 맞기 3대 비결’을 머리로 아는 것과 몸에 익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대도 안 맞으려 발버둥치다 지난해 13년 만의 복귀전에서 승리한 전 세계권투협회(WBA)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 최용수(45)씨의 말에서 위안을 얻었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못 보고 맞는 주먹이 있다. 결국 권투란 내 살을 내주고 상대 뼈를 취해서, 승리라는 결과물을 얻는 과정이다. 대개 인생살이와 비슷하다.”

결국 인생도 권투도 한 대도 안 맞을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 미사일방어(MD)의 핵심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문제가 있다. 한 대도 안 맞고 상대만 흠씬 두들겨 패겠다는 발상 자체가 세상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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