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를 주제로 한 20차 촛불집회가 열린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문화 공연을 즐기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박근혜 없는 첫 촛불집회’이자 ‘마지막 촛불 집회’가 열린 11일, 광장에는 ‘정의가 실현됐다’는 자부심과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간절함이 교차했다. <한겨레>는 11일 전국 주말 촛불집회에 참여한 40명에게 탄핵 선고 순간의 소감과 아쉬운 점, 탄핵 이후 해결해야 할 과제를 물었다. 박 전 대통령 처벌부터 사드 배치 문제 해결, 양극화 해소까지 이들의 요구는 다양했지만, 정의와 민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꿈꾼다는 점에선 한 목소리였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박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던 순간, 세종시 전동면 동막골에 위치한 경원사에선 대중 수십명의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원사의 효림 스님은 “기각되지 않을지 불안감이 있었는데 결국 다수 대중의 정의가 실현됐다”면서 “사실 절에선 용서하고 관용해야 하는데….”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세종시 새롬중학교에서도 수업 중 교사들을 통해 파면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영은씨(37)는 “회사 회의실에서 큰 스크린으로 다 같이 생중계를 봤다. 기분이 좋아서 점심과 저녁에 회사 동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축하했다”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선고의 아쉬운 점에 대해선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헌재가 탄핵 사유 중 세월호 참사 당시 생명권 보호 의무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꼽았다. 새롬중 2학년 김다영 양은 “아쉬운 점을 묻는다면, 학생들은 무조건 세월호다. 앞으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 억울하게 떠난 언니 오빠들을 위로해드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탄핵 이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에선 박 전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처벌 등 ‘적폐 청산’을 꼽은 사람들이 많았다. 탄핵 선고 당시 청주에 있는 회사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는 박지선(26)씨는 “박근혜와 우병우, 문고리 3인방을 모두 법정에 세워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울산 동구에 사는 황명필(44)씨는 “검찰 등 사법기관, 언론, 공직사회 개혁이 시급하다. 바른말 하는 사람은 좌천되고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은 승진하는 풍토부터 청산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광주 금남로 촛불집회에 참석한 김민호(48)씨는 “사드 정책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대선주자들이 사드 배치를 다음 정부로 넘기라고 요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해야 하는 등 기울어진 ‘사드 운동장’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양극화·취업난·도농격차 해소 등 사회 전반에 산적한 문제들을 쏟아놨다. 경기도 수원에서 촛불집회에 나온 한재범(50)씨는 “저소득층이 돈이 없으니 사채를 빌려 쓰는 지경이다.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힘을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대학생 김종태(22)씨는 “곧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는데 일자리 문제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됐으면 좋겠다. 그동안 정부에선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했는데 이젠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역시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김경란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국장은 “최저임금이 1만원 정도는 돼야 낮은 임금 받는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남 담양군민 정효정(47)씨는 “농촌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도 학비와 거주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서울로 보낼 수가 없다. 앞으로 대통령은 농촌의 교육과 의료를 챙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정책의 직접적인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개성공단 폐쇄 피해업체 직원인 오광환(63)씨는 광화문광장에서 바지를 팔다가 “남북관계를 회복시켜 개성공단에서 마음 놓고 생산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조경철 제주 강정마을 주민회장은 “군은 해군기지 공사를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34억원의 구상금을 청구하는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정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교사 최아무개(59)씨는 “전교조가 박근혜 정권에서 법외노조 상태로 밀려났다. 시국선언을 한 교사들은 징계받거나 재판에 넘겨졌다. 교사 공무원의 노동기본권과 정치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촛불시민들은 대선주자와 정치권에도 명확한 자세를 요구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광화문광장 집회에 온 정대영(38)씨는 “대선후보들이 통합을 이야기하는데,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게 통합이 아니다. 재벌이나 검찰 개혁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는 후보들이 많아 아쉽다”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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