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
작게 시작된 박수소리가 대통령 파면이 확정되는 시점, 거대한 환호성을 바뀌었다. “촛불이 승리했다” “우리가 승리했다” 무대 위에서 연사가 소리쳤다.
10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서 숨을 죽인채, 귀에 손을 가져대거나 손피켓을 둥글게 말아 귀에 가져다대고, 이어폰을 꽂고 탄핵선고 생중계를 살피던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자 거대한 환호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모르는 이들끼리 서로 등을 두드리며 포옹을 나눴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겼어요” 서로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율곡로 도보를 따라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를 외치며 춤을 추는 시민들도 보였다. 몇몇 청년들은 미리 준비해온 ‘축 탄핵’이 적힌 고깔모자를 쓰고 기쁨을 표현했다. 고깔모자를 쓰고 만면에 웃음을 띤 김태은(25)씨는 “그냥 우리가 이길 수 있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며 “이런 경험은 역사 속에도 그리고 평생 내 삶에도 남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탄핵 뒤, 권영국 변호사는 무대에 올라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국민여러분이 일으켜 세우셨다. 이제 승리했다. 우리는 계속 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직무대행은 “진짜 봄이 왔다. 오늘에야 드디어 봄이왔다”고 기쁨을 나눴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탄핵 직후 ‘오늘 우리는, 주권자들의 승리를 선언합니다’라는 촛불항쟁 승리 선언문을 배포했다. 선언문에서 이들은 “참여와 행동으로 물길을 낸 시민들의 힘이다. 우리는 존중과 평등의 공론장을 만들었다”고 촛불항쟁의 그동안 노력을 이야기하면서도, “이게 나라냐고 할만큼 망가진 나라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고통받은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것”이라며 앞으로 촛불의 각오도 다졌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당시 박대통령의 직무유기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장은 이날 승리의 무대에 올라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절규했다. “도대체 왜 , 왜, 왜 세월호만 안됩니까. 왜 우리애들만 안됩니까. 왜 죽였는지 왜 죽었는지, 그거 하나만, 그거 하나만 알려달라는데, 그것만 알려달라는데.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왜 우리애들만 안됩니까. 제발 알려주세요. 나 죽기 전에 그거 하나만 알고 죽게해주세요.” 지켜보던 시민들은 기쁨 속에, 착잡함을 안고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탄핵선고로 기쁨을 나눈 촛불시민들은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따듯한 봄볕에 “와아 탄핵하기 참 좋은 날이다”라고 외치거나, 지인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오늘 기분이 너무너무 좋다”며 손을 흔들었다. 행진 대열 가장 앞에는 그러나, 아직도 풀지못한 숙제를 담은 문구를 든 시민들이 섰다. ‘우리가 세월호다. 특검하라.’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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