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10일 오전 11시부터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진행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는 데 걸린 시간은 ‘21분’이었다.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에겐 너무 짧았는지 모르지만, 지난겨울부터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촛불을 들었던 이들에겐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이날 재판관들은 오전 8시를 전후해 모두 헌재로 출근했다. 재판장으로서 결정문을 낭독해야 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긴장한 탓인지 머리카락을 둥글게 마는 데 쓰이는 분홍색 헤어롤 2개를 뒷머리에 그대로 둔 채 출근해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이 재판관은 청사 안 엘리베이터에 탄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전해졌다.
선고 30분여 전 양쪽 대리인들이 먼저 헌재 대심판정에 들어와 “고생했다”며 서로 악수를 나눴다. 그동안 법정 안팎에서 치열한 설전을 벌였던 이들은 이날만큼은 역사적 재판의 무게감을 의식한 듯 차분한 표정이었다. 대심판정 104석도 모두 찼다. 취재진 외에 약 800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24명의 일반인 방청객들도 긴장된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 대리인 서석구 변호사는 이날도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이 재판관은 7명의 재판관과 함께 오전 11시 정각이 되자 대심판정에 들어섰다. “2016 헌나1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국회 소추위원과 박 대통령 대리인 3명, 일반인 방청객과 기자 104명, 그리고 대심판정 밖의 온 국민들의 눈과 귀가 이 재판관에게 쏠렸다. 이 재판관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결정문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이 재판관은 먼저 대통령 쪽에서 문제 삼아온 국회 가결 절차가 적법해 각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본격적인 탄핵 소추 사유에 대한 판단으로 넘어갔다. 이 재판관이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 자유 침해, 세월호 참사 생명권 보호 의무와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 등 3가지 탄핵 소추 사유들이 대해 연이어 “인정하기 부족하다”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탄핵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히자, 국회 소추위원단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하지만 오전 11시12분 박 대통령의 최순실씨에 대한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에 대한 판단을 시작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 재판관이 “피청구인의 행위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박 대통령의 대리인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았다. 드디어 오전 11시21분, 이 재판관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낭독했다. 선고와 함께 박 대통령은 즉시 파면됐다. 대심판정 안은 고요했지만 소리없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선고를 방청한 김혜정(27)씨는 재판이 끝난 뒤 “재판관님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떨렸는데, 파면한다고 말할 때 크게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보충의견을 소개한 뒤 이 재판관은 “이것으로 선고를 모두 마칩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마치고 다른 재판관들과 함께 차분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시계는 오전 11시2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고가 끝난 뒤 대심판정 앞에 나온 국회 소추위원단과 대리인들을 대표해 권성동 국회 소추위원은 “이번 사건의 승리자도 없고 패배자도 없다.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취재진을 피해 헌재를 빠져나갔지만, 서석구 변호사는 “헌재가 영적 분별력 없이 판결했다”며 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심판정 밖에서 30분 넘게 머무르며 헌재 결정을 비판했지만 “결정에 불복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변호인단과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답하며 말끝을 흐렸다.
김민경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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