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출신의 이상철(83)씨는 주변 친구들이 보내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스위스은행에 수조원을 숨겨놨다’는 내용의 가짜뉴스 등 친박 쪽의 문자·카톡에 시달리다 못해 경찰서를 찾았다. 그는 18차례의 촛불집회 중 2번만 빠지고 모두 참여했을 정도로 열성적인 박근혜 탄핵 지지자다. 그는 “경찰이 저한테 ‘고발을 하면, 당신에게 카톡을 보낸 그 사람이 처벌받는다’라고 하길래 차마 고발까진 하진 못했다”면서 “대신 보내온 친구들에게 ‘누군가 고발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은근히 겁을 준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60대 이상 세대에선 탄핵 정국 이후 다른 어느 세대보다 세대 내 갈등이 심하다.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친박’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탓이다. 실제 한국갤럽의 3일 발표한 전국 만 19살 이상 성인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탄핵을 찬성한다”고 밝힌 이들이 20대부터 40대까지는 90%에 이르렀지만, 50대에선 67%였고, 60대 이상에선 50%(반대 39%·모름 11%)로 대조적이었다.
정아무개(62)씨의 대학교 동창 15명이 모인 모임은 만든지 40년 만에 깨질뻔한 위기를 맞았다. 평소 정치에 대해선 무관심했지만 정씨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를 올리자 긴장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어 ‘친박’인 다른 동창생 2명도 적극적으로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기사를 올렸다. 결국 한 동창생은 카톡방을 나가버리고, 보고만 있던 동창생들이 “왜 이렇게 시끄럽냐.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고 나서자 찬반 양쪽 모두 더는 이 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정씨는 “40년 동안 맺어온 친구 관계가 박 대통령 문제로 다 깨져버릴 뻔했다”고 말했다. 고교 동창 6명과 5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안아무개(76)씨도 “동창 카톡방에 검찰 공무원 출신의 한 친구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북한에 갖다 바칠 것’이라는 등 유언비어성 카톡을 올려서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은퇴한 후엔 매년 친구들과 1박2일 엠티를 갔는데, 올해는 못 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노년층과 젊은 세대 간의 갈등도 상당한 수준이다. 김우석(36)씨는 최근 들어 부모와의 관계가 멀어져 불편하다. 대구에 사는 김씨의 부모님들은 가족이 만든 카톡방에 탄핵 반대 글을 올린다. 언론 보도를 근거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지만 “편향된 언론을 어떻게 믿냐”며 듣지 않는 부모님과 대화는 언쟁으로 끝난다. 김씨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면 부모님들 병이 날 것 같고, 반대로 기각하면 우리는 열 받고 부모님 세대들이 ‘봐라’하면서 기세등등해져서 의견 대립이 더 심해질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김지훈 안영춘 박수진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