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국민대 조형대학 학생회는 신입생들에게 성폭력 발생 시 매뉴얼 등이 포함된 웰컴키트를 나누어주었다. 오픈페미니즘 제공
대학 신입생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한 오리엔테이션이나 엠티에서 불편한 폭력을 겪고 속앓이를 한 적 있으신가요? 올해도 어김없이 신입생 환영회나 엠티에서 성추행·성폭력 사건이 있었다는 뉴스가 들려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2015년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서 한 여학생에게 “얼굴을 보니 왜 배우를 안 하고 사회를 보는지 알겠다”는 외모비하 발언을 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최근 임시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사퇴 권고를 받기도 했지요.
이러한 가운데, 대학 공동체 차원에서 성차별 문화를 바꾸고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학생회는 지난달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특별한 입학 환영 선물(웰컴키트)을 나누어 주었는데요. 웰컴키트 소개 영상을 잠깐 보시죠.
▶국민대 조형대학 신입생 웰컴키트 소개 영상
웰컴키트에는
‘성폭력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을 포함해 일상에 퍼진 여성 혐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만화, 연결과 연대를 상징하는 유에스비(USB)·배지, 스티커가 들어 있는데요. 대응 매뉴얼에는 성폭력의 정의, 피해 시 법적 처리와 대학 내부신고 절차, 증거 수집 시 유의사항, 주변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 등이 구체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바로가기: https://docs.google.com/document/d/1a-SAlQL6lKQdtZXOJlUV7TbYmfhHYvlc1cGYJlflqKA/edit)
국민대 조형대 신입생 웰컴키트에 포함된 만화. 오픈페미니즘 제공 * 누르면 확대됩니다.
조형대 학생회 지원을 받아 웰컴키트를 만든 건 시각디자인학과 페미니즘 소모임으로 출발해 단과대로 활동 기반을 넓힌 ‘오픈페미니즘’ 학생들입니다. 소모임 회원 개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웰컴키트는 학생 약 20명이 지난 두 달간 작업해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9월 시각디자인학과 안팎에서 성차별 논쟁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이 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한 대화의 장이 열렸는데요. 이후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소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또 시각디자인학과 학생회는 학과 차원에서 성폭력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절차와 방법을 규정한 ‘반성폭력 학생회칙’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활동만으로는 대학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긴 어렵습니다. 오픈페미니즘 회원인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3학년 이연경씨는 “대학 안에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상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전문인력이 부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인 ‘인권네트워크 사람들’은 평등한 대학을 위한 반성폭력 캠페인을 뜻하는 ‘펭귄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펭귄프로젝트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 누르면 확대됩니다.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인 ‘인권네트워크 사람들’은 평등한 대학을 위한 반성폭력 캠페인을 뜻하는 ‘펭귄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학별 학생회·학회·동아리·개인들과 함께 성폭력 사건을 기록하고, 관련 세미나·강연 등을 준비 중입니다. 3월30일에는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이라는 행사를 연다고 하는데요. 4일 행사 준비를 위한 첫 회의가 열립니다. 펭귄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다면 서포터즈로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펭귄프로젝트는 프랑스 만화가 토마 마티외가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폭력과 성차별을 그린 ‘악어프로젝트’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합니다.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김영길씨는 “새 학기만 되면 군기 잡기·성폭력 사건이 반복되고, 학생 대표를 하겠다는 이들이 여성 혐오 발언을 해 선거가 무산되는 일도 많다”며 “학생들이 광장에서도 대학이라는 공동체 깃발을 들고 뭉치지 않는 건, 자기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불평등한 문화 때문이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이 있다. 교양필수 과목에 성평등을 포함하는 등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요구안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