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진행된 3·1절 행사. <한겨레> 자료사진
태극기를 드느냐 마느냐.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세력이 태극기를 집회 상징처럼 사용하면서, 3·1절 행사를 준비하던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난처한 처지에 빠졌었다.
특히 서울 종로구청의 고민은 각별했다. 종로구는 ‘3·1운동의 발상지’이자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의 거점이기도 하다. 자칫 구에서 진행하는 3·1절 행사가 탄핵 반대 의미로 읽힐 ‘오해의 소지’가 있어 고민하던 구청 쪽은 결국 “만세운동에 태극기가 빠지는 것은 본질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조은실 종로구청 문화사업팀장은 “이념싸움에 희생되고 있는 태극기가 안타깝기도 하고, 태극기 본연의 가치를 찾아준다는 차원에서 행사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명실상부한 ‘3·1운동의 발상지’다.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요릿집 태화관은 인사동에 터가 있고, 당시 학생들은 종각의 와이엠시에이(YMCA)를 거점 삼아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3·1운동의 함성이 가장 먼저 울려 퍼졌던 탑골공원 역시 종로3가에 있다.
3·1절 행사는 구청의 연례행사지만, 이번 행사 준비엔 경찰에도 긴밀한 협조를 구했다. 행사는 1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인사동 남인사마당 야외무대 및 보신각~종로2가 일대에서 열리는데, 탄핵 반대 쪽에선 오전 11시~오후 2시 세종대로부터 동대문까지 기도회를 열 계획이다. 구청 쪽은 오전 11시45분께부터 500여명이 태극기를 들고 남인사마당에서 보신각까지 ‘태극기 물결 행진’을 재현할 계획도 있다. 시간대와 장소가 일부 겹칠 수밖에 없다. 조은실 팀장은 “짧은 거리지만 경찰 쪽에 양쪽이 충돌하지 않게 해 달라고 협조 요청을 했고 저희도 전담인력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종로구는 최근 발행한 10여쪽의 소식지 <종로 사랑> 3월호에선 애초 표지 후보로 올랐던 태극기를 최종심의에서 배제했다. 소식지 편집에 참여한 종로구 관계자는 “요즘 시국에 태극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태극기는 심지어 유관순 열사의 고향 충남 천안에서 열린 3·1절 관련 행사 때에도 등장하지 못했다.
충남 천안시는 제98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지난 25일 오후 신부문화공원에서 시민참여형 만세 플래시몹을 열었다. 만세 플래시몹 참가 ‘대표 33인’이 유관순 열사 복장을 하고 ‘만세’를 선창하면, 공원에 모인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만세삼창을 함께 하는 행사였다.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진 않았고 카드섹션으로 태극기를 연출했다. 천안시 관계자는 “‘만세 플래시몹’ 참가자에게 태극기를 나눠주지 않았다. 최근 탄핵반대집회에서 태극기가 사용되는 상황에서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역시 3·1절 기념 부대행사 참가자들에게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기로 한 계획을 취소했다. 경기 성남시도 시청 앞에서 열릴 3·1절 기념행사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보수단체의 탄핵 반대 집회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정치적 구호 등은 하지 않기로 했다.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여왔던 서울 강남구는 3·1절을 기념해 ‘찾아가는 태극기 홍보 부스’를 운영하고, 태극기 게양 ‘인증샷’을 보여주면 관내 영화관·아쿠아리움 등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혜택 등을 마련했다. 하지만 ‘탄핵 반대 세력’으로 오인받을 수 있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박수지 최우리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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