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2일 탄핵심판 16차 변론을 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81일 동안 20차례 재판을 여는 동안 헌법재판소는 ‘공정과 신속’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7차례 진행된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들은 탄핵 소추 사유를 중심으로 법적 다툼을 벌이기보다 “국회 수석 대리인”, “내란” 등 ‘막말 변론’을 이어가 탄핵심판을 ‘막장드라마’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 20차례 재판·25명 증인신문
헌재는 지난해 12월9일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심판을 청구하자 강일원 재판관을 주심으로 결정하고 즉시 회의를 열었다. 이어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탄핵소추사유 때문에 쟁점과 증인을 정리하기 위해 12월22일, 27일, 30일 세 차례 준비절차를 열었다. 이후 1월5일부터 27일까지 17차례 변론을 열고 25명의 증인에 대해 26차례 신문을 진행했다. 증인 중 유일하게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만 헌재에 2번 출석해 증인신문을 받았다.
20차례 재판 중 박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9분 만에 끝난 1월5일 1차 변론이 가장 짧았고, 최순실씨와 안 전 수석의 증인신문이 10시간 넘게 진행된 1월16일 5차 변론이 가장 길었다. 그러나 증인으로 채택된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등은 헌재의 출석요구서를 받지 않기 위해 잠적해 헌재는 경찰에 소재탐지를 요청했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재는 탄핵심판 청구 때부터 최종 변론까지 50일 동안 7차례 변론을 열었다. 증인신문도 최도술씨 등 4명에 그쳤다. 박 대통령의 탄핵 소추 사유가 노 대통령 때보다 훨씬 복잡한데도 매주 2~3차례 변론을 열고 81일간 20차례 재판, 26차례 증인신문을 마친 것은 헌재의 신속한 탄핵심판 의지를 보여준다. 그 배경에는 국정 공백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의 조기 종결 필요성뿐 아니라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을 앞두고 ‘7인 체제’가 되기 전에 탄핵심판 선고를 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 공정과 신속 사이
헌재는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고르게 공정과 신속을 강조해왔다. 지난 1월5일 1차 변론이 시작되자마자 박 전 헌재소장은 “이 사건의 엄중한 무게를 깊이 인식하고 있다. 이 사건을 대공지정(아주 공정하고 지극히 바름)의 자세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을 다하여 심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정미 재판관도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아 첫 재판을 진행한 1일 10차 변론 시작 직후 “이 사건 심판 과정에서 절차의 공정성, 엄격성이 담보되어야만 심판 결과의 정당성도 확보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쪽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쪽이 무더기로 뒤늦게 증인으로 신청한 47명 중 18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헌재는 최종 변론 기일도 애초 24일로 정했다가 박 대통령 쪽의 연기 요청에 27일로 미루기도 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 대리인들이 헌재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하자 이 재판관은 “문서송부촉탁신청 13건 중 피청구인(박 대통령)이 6건, 사실조회 70건 중 피청구인이 68건을 신청했다. 청구인이 신청한 증인이 9명, 피청구인이 신청한 증인이 26명이다. 이 재판을 편파적이다, 무효라고 하면 누가 납득하겠나”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나 헌재는 박 대통령 쪽의 ‘지연작전’에는 맺고 끊음을 분명하게 했다. 먼저 박한철 전 헌재소장은 1월25일 9차 변론에서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13일까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재판관도 16일 14차 변론에서 “채택한 증인이 나오지 않으면 취소하겠다. 23일까지 최종 의견서를 내고, 박 대통령의 출석 여부도 22일까지 알려달라”고 못 박았다. 헌재는 22일 박 대통령 대리인들의 강일원 재판관 기피신청도 “소송 지연 목적”이라며 15분 만에 기각했다.
■ 대통령 대리인들의 ‘막장변론’
박 대통령 대리인들은 탄핵심판 내내 ‘막장변론’으로 물의를 빚었다. 헌재 대심판정에서 국회와 대통령 쪽의 법리 논쟁은 사라지고, 원색적인 비난만 난무했다. 김평우 변호사는 22일 16차 변론에서 “강일원 재판관은 법관이 아니라 청구인(국회)의 수석대리인”,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에 맞춰 재판을 과속하게 진행하는 것은 국민을 국정 불안으로 모는 것”, “아스팔트 길은 피와 눈물로 덮여” “우리나라에 잘못하면 내란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며 1시간 40분간 ‘막말’을 이어갔다. 김 변호사는 20일 15차 변론에서도 막무가내로 변론하려다 제지를 받자 재판부를 향해 “헌법재판관씩이나 하냐”며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도 했다.
이중환 변호사는 1일 10차 변론에서 “이 사건의 발단은 대통령의 40년 지기로서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최순실이 고영태와 불륜에 빠지면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며 차은택씨 증인신문에서 “내연관계”, “동거”, “성관계” 등을 언급했다. 이 변호사는 박 헌재소장의 “3월13일까지 선고” 발언에 반발하며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헌재를 압박하기도 했다. 서석구 변호사는 1월5일 2차 변론에서 “촛불민심은 국민의 민의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배후에 종북, 주체사상이 있다는 취지로 진술해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까지 동원했다.
27일 최종 변론을 마친 헌재는 탄핵심판의 인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평의에 들어간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2004년 4월30일 최종 변론이 끝나고 2주 뒤인 5월14일 탄핵심판 기각 결정을 내렸다. 전례와 이정미 재판관 퇴임 이전 선고 공감대에 비춰봤을 때 헌재는 3월9일, 10일, 13일 중 하루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때와 달리 이번에는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은 자신의 이름을 결정문에 밝혀야 하고, 탄핵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을 상실한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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