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우편물 분류 작업을 하던 고 조만식씨의 모습. 조씨는 매주 일요일, 정식 근무일이 아닌데도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하기 위해 ‘무료 노동’을 해야 했다고 동료들은 증언했다. 아산 영인우체국에서 일하던 조씨는 지난 5일 동맥경화로 갑자기 사망했다. 조만식씨 유가족 제공
조만식(44). 3년을 계약직, 13년을 정규직 집배원으로 일했다. 충남 아산시 둔포면, 영인면 등지를 돌며 편지와 등기우편, 소포를 날랐다. 축농증이 있었지만 대체로 건강했다. 일요일이던 지난 5일 조씨는 일하고, 집에 돌아가 숨졌다. 병원은 사망시각을 6일 새벽 1시께로 추정했다. 부검 1차 소견은 동맥경화였다. 빈소에서 동료들은 목놓아 울었다. “동료들이 정말 많이 울어서 ‘순둥이 동생 만식이가 참 좋은 아이였구나’, 생각했어요.” 형 영욱(47)씨가 힘겹게 입을 뗐다. 조씨가 숨지기 엿새 전, 경기도 파주시에서 또 한 명의 집배원이 돌연사했다. 올해만 집배원 3명이 순직했다. 지난해엔 6명이 일하다 숨졌는데, 교통사고 사망자 1명을 뺀 나머지는 모두 돌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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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식씨의 ‘무료 노동’ 조씨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가족 모두가 교회 사택에 살았는데, 만식씨는 출퇴근이 힘들어 주말에만 머물렀다. 평일에는 우체국 근처 원룸에 혼자 살았다.
5일 오전 만식씨는 교회 예배를 올리고 성가대 연습을 했다. 형 영욱씨는 “그때 ‘오늘만큼은 일 가지 말라’고 말리지 못했던 게 마음에 영원히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만식씨는 저녁 6시께부터 밤 10시 반까지 우체국에서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 분류 작업을 했다. 미리 해두지 않으면 다음날 우편물까지 몰려 배달이 밀린다. 임금을 받지 못하는 ‘무료 노동’이었다.
집배원에게는 각 우체국에서 지정하는 ‘근무명령’ 시간이 있다. 임금이 주어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근무명령 시간 안에 일을 끝마칠 수 있는 집배원은 거의 없다. 대부분 조씨처럼 ‘무료 노동’을 한다. 지난해 7월 노동자운동연구소는 집배원 183명(5053일)의 실제 출퇴근 시간 자료를 분석했는데, 일주일 근무 시간이 55.9시간에 달했다. 평균 노동자 근무 시간보다 12시간 많았다. 같은 해 우정본부는 ‘2015년 집배원 근무 시간(임금지급 기준)이 일주일 47.8시간’이라고 발표했다. 보통의 집배원들이 일주일에 8.1시간, 한 해로 치면 421시간만큼 조씨처럼 임금과 상관없는 ‘무료 노동’을 한다는 의미다.
우편물 분류 작업 중인 고 조만식씨. 유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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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노동에도 임금을 달라” “조씨는 원래 나서는 성격이 아닌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 근무환경이 좀 나아질까’ 싶은 마음에 참여했을 거예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6년 동안 김진태(42)씨는 조만식씨 옆자리에서 일했다. 2012년 김씨는 ‘근로 시간을 정당하게 인정하라’는 소송을 낸다는 우정노동자회 문자메시지를 보고 조씨와 함께 소송에 참여하기로 했다. 전국에서 집배원 45명이 모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한 이들이 많아 현재는 12명만 남았다. 조씨는 충남에서는 유일하게 현직에 남아 있는 소송참여 집배원이었다. 김씨는 “나는 소송 내고 미운털이 박혀 우체국을 그만뒀다. 만식이 형만 남았는데, 평소 말없는 성격이라 티 내진 않았어도 소송 낸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8월 우정본부 쪽이 제시한 ‘집배업무부하시스템’(업무 부하를 산정하는 시스템)을 근거 삼아 “집배원들이 근무명령 시간 안에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취지의 원고 일부 패소 판결을 냈다. 조씨의 무료노동도 부하시스템에 따르면 ‘존재할 수 없는 노동’이었던 셈이다. 우정노동자회 관계자는 “판결 뒤 실제로 근무명령 시간만큼만 일을 해봤다. 일이 밀려 난리가 났다. 부하시스템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며 답답해했다. 재판은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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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개 우체국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조씨가 일한 아산 영인우체국이 맡는 영인·둔포·음봉·인주면에는 최근 대기업 공장과 하청업체들이 들어섰고 신도시도 개발됐다. 김진태씨는 “출입문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업 우편물도 늘고, 신도시도 생겨나 가구도 늘었지만 최소 지난 10년 동안 인력 충원은 없었다. 계속 20명이 일했다. 조씨는 1년 전까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힘든 둔포면 일대를 맡았는데 그때 몸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정본부는 인력 충원에 소극적인 이유로 “전체 우편물량이 줄어든 것”을 근거로 삼는다. 집배노조 쪽은 이에 대해 “516개 각 우체국이 처한 상황, 수시로 변하는 인구구조 등 다양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짚었다. 1인가구 증가로 집배원 한명이 맡는 가구수는 지난 10년 사이 7.8%(95가구)가 늘었고, ‘어떻게든 수취인을 만나 전해야 하는’ 등기우편 등 특수통상 우편물도 같은 기간 7.9%(2022만7000통) 늘었다.
‘독거노인 집에 티브이를 놓아드리겠다며 안테나를 사들고 기다리던 사람, 돈 빌려달라면 대출받아서 빌려주는 사람’이라는 조씨는 결혼한 지 5개월 된 아내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만식이 빈자리 채우느라 동료들이 많이 고생하고 있을 거예요.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게 만식이 뜻일 테니까요.” 형 영욱씨가 조씨의 생전 사진을 건네며 말했다. 2015년 우정사업본부 산재율은 1.05%로 한국 노동자 평균 산재율 0.50%의 두배가 넘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