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 등이 담긴 ‘고영태 녹취록’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의 증거로 채택됐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 쪽 대리인들은 녹취록이 없는 남은 2000여개의 녹음파일을 대심판정에서 모두 틀자며 ‘심리 지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헌재는 14일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13차 변론에서 양쪽의 동의를 얻어 고영태 녹취록 29건을 증거로 채택했다. 앞서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들은 지난 13일 녹취록 전부를 증거로 신청했다. 소추위원인 권성동 바른정당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사적인 내용이 담긴 대부분의 녹음파일과 달리 29개 녹취록은 오히려 탄핵 소추 사유에 부합하는 자료라 증거로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국회가 헌재에 낸 증거제출서를 보면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는 지난해 4월 지인들에게 “브이아이피(VIP·박 대통령)는 이 사람(최씨)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뭐 하나 결정도, 글씨 하나, 연설문 토씨 하나 다 수정을 보고 오케이 하고, 옷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하고”, “VIP가 믿는 사람은 소장밖에 없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쪽은 녹취록이 증거로 채택됐음에도 다른 녹음파일도 증거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 손범규 변호사는 “음험하고 기획된 폭로 공작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상당 부분 조작돼 오늘까지 왔다”고 주장했다. 이중환 변호사는 기자들과 만나 “녹음파일이 다 공개되면 추가로 증인신청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추가 증인신청 뜻까지 밝혔다. 박 대통령 쪽의 주장대로 2000여개 녹음파일을 일일히 재생하는 방식으로 증거 조사를 하고, 추가 증인신문까지 하게되면 탄핵심판의 2월 종결·3월13일 전 선고는 불가능해진다.

헌재는 이날 증인들을 정리하며 심리 속도를 높였다. 헌재는 추가 증인신청을 기각하면서 이날 증인신문에 출석하지 않은 김홍탁 플레이그라운드 대표,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의 증인 채택을 취소했다. 박 대통령 쪽이 출석을 자신했던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도 끝내 나타나지 않자 박 대통령 대리인들이 증인 신청을 철회했다.

전날 박 대통령 대리인으로 추가 선임된 이동흡 전 재판관은 이날 법정에 처음 나와 “부양해야 할 자식도 없이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말을 들으며 오로지 애국심 하나로 사심 없이 평생을 조국과 국민을 위해 헌신해온 피청구인(박 대통령)을 따뜻한 시각에서 봐달라”며 옹호에 나섰다.

김민경 김지훈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