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협력과 인도주의 실천에 헌신해 온 시민사회 원로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4일 오전 9시께 입원 중이던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4.
1923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흥사단 이사장, <한국방송>(KBS) 사장,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고인의 공식학력은 소학교 중퇴가 전부지만 어린 시절부터 폭넓은 독서로 식견을 넓혔다. 광복 이후 서울에 와 ‘조선민족청년단’에 가입해 김구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과 인연을 맺었다. 장준하 선생과는 종합교양지 <사상>을 함께 발행하기도 했다.
인도주의 운동의 출발은 1953년 대한적십자사 청소년국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청소년 국장 시절 특히 청소년 조직 만들기에 힘쓰며 중·고교생들의 해외 방문을 지원했다. 이때 고인의 도움으로 미국 땅을 처음 밟은 뒤 인연을 이어온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5일 빈소를 찾아 “고등학생때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키워주셨다”며 눈물을 훔쳤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인 흥사단 이사장을 지냈다.
적십자사 사무총장으로 있던 1972년엔 남북대화의 물꼬를 튼 1차 남북적십자회담 등에 남쪽 대표로 나갔다. 1996년에는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았다.
고인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정계에 진출해 16대 전국구 의원에 당선된 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대표 최고위원을 맡기도 했다. 이듬해 적십자사로 돌아와 2003년까지 적십자사 총재를 맡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적십자사는 “서 전 총재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앰뷸런스를 타고 직접 시민들을 구호하기도 했다”는 일화를 전하며 “인도주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날 서 전 총재 빈소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이 잇따랐다. 유족으로 부인 어귀선씨와 아들 홍석(부산대 화학과 교수) 유석(호원대 부총장) 경석(한양대 인문대학장), 딸 희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7일 오전 7시. (02) 3410-6903.
방준호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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