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5일 오후 서울역 승강장이 설을 맞아 귀성길에 오른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열차 출발 날이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시작이에요. 어떻게든 한 자리는 나온다니까요.”
강명순(가명·38)씨는 설을 사흘 앞둔 24일이 돼서야 고향인 부산행 열차표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씨가 노리는 건 출발이 임박해 반환될 노쇼(No-show) 기차표다.
‘기차역에서 밤샘노숙 끝에야 반환표를 손에 넣었다’는 건 옛날 얘기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한 세대들에게 이제 무기는 ‘스마트폰 열차예매 애플리케이션’과 ‘날아다니는 손’이다. “출발 사나흘 전부터 짬짬이 스마트폰을 보다 보면 안 좋은 시간대 열차의 한 좌석은 무조건 나옵니다. 일단 그 좌석을 예매한 뒤 출발 하루 전 ‘갈아타기’를 합니다.”
강씨가 ‘갈아타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출발 하루 전부터 반환표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24일 <한겨레>가 코레일에서 받은 지난해 명절 기간 열차표 반환 현황을 보면, 지난해 추석 연휴(9월13~18일) 열차표 425만8000장 중 72만1000장(16.9%)이 열차 출발 채 24시간이 남지 않은 시점에 반환됐다. 총 135만1000장이 반환됐는데, 절반 넘는 반환표가 출발 하루 전부터 당일 사이에 쏟아졌다는 뜻이다. 지난해 설 연휴(2월5~10일) 열차표 반환 추세도 비슷했다. 총 371만2000장 중 110만9000장이 반환됐는데, 이 중 절반 넘는 59만장(15.9%)이 출발 하루 전부터 쏟아졌다.
코레일 관계자는 “예매일(일반적으로 명절 20~30일 전)부터 출발 이틀 전까지의 반환표와 출발 하루 전부터 출발 직전까지의 반환표가 엇비슷할 정도로 출발이 임박해 반환표가 몰리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강씨가 출발 하루 전부터 좀더 좋은 자리를 찾아 ‘메뚜기 뛰듯’ 좌석예매와 취소를 반복하며 ‘갈아타기’를 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반환수수료는 물어야 한다. 하지만 ‘출발 1일 전까지는 무료, 출발 1일 전~출발 1시간 전은 400원, 출발 1시간 전~출발 시점까지는 10%’ 정도인 만큼 부담이 큰 건 아니다. 강씨는 “직장인들이 여유 있는 출퇴근시간대, 점심시간대에 황금 좌석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취소와 예매가 간편한 애플리케이션 때문에 늘고 있는 명절 열차예매 ‘노쇼’의 빈틈을 비집은 강씨의 부산행은 지난해 설과 추석, 모두 성공했다.
‘명절 표는 서두르지 않으면 구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잘못됐다는 점은 또 다른 통계로도 확인된다. 이렇게 쏟아진 반환표 중 15% 정도(전체 표의 약 4.5%·입석 포함)가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레일 쪽은 “반환된 표 중 85% 정도 재구매가 이뤄진다”며 “하지만 출발이 임박해서 이런 시도를 할 경우 실패하면 대안이 없어 추천해 드리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씨는 “‘일행과 함께 나란히 앉아 가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고향은 반드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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