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30억원대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등의 혐의로 청구된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되자 19일 오전 종이백을 들고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걸어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이 19일 새벽 법원에서 기각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분노와 허탈감을 쏟아냈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거셌다.
삼성이 대한민국 서열 1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분노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DrPyo)에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관련 기사를 게재한 뒤, “역시 법원은 이재용을 일반 국민과는 다르게 대접해 드리는군요. 재벌 족벌 편법 증여로 돈이 많으면 법도 흔들흔들”이라고 적었다. 표 의원은 이어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이재용으로부터 돈을 받는다”라고 비판했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도 트위터(@mindgood)에 “삼성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역시 박근혜, 최순실도 허수아비고 삼성이 대한민국 서열 1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면서 “조의연 판사가 영장을 기각한 사람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박동훈 폭스바겐 전 사장, 존 리 전 옥시 대표. 최소한 3대에 걸쳐 먹고 살 것을 마련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백 위원은 “2400원 횡령한 버스 기사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한 사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수천억대 차익을 남기고 그룹을 승계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불구속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의”라고 꼬집었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트위터(@histopian)에 “판사 한 사람이 미래의 삼성 고문변호사행 티켓을 셀프 발급했군요”라고 비판했다.
#박영수특검힘내라
이 부회장 영장 기각 소식은 박영수 특검에 대한 열띤 응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권영철 씨비에스(CBS)노컷뉴스 정치선임 기자는 페이스북에 “#박영수특검힘내라! 이런 해시태그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특검에게는 국민의 응원이 힘입니다”라고 제안했다. <한겨레>가 ‘#박영수특검힘내라’ 해시태그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검색해보니, 누리꾼들은 “술술 풀리면 뭔 재미입니까? 특검 끝까지 파이팅!”, “자료 보강해서 (구속영장 재청구) 한 번 더 갑시다!”, “진정한 법꾸라지 삼성. 그래도 박영수 특검 힘내라” 등 다양한 목소리로 특검을 응원하고 있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페이스북에 “이럴 땐 특검 사무소 앞에 격려의 꽃 한 송이 놓아드리는 겁니다”라고 적었다. 앞서 한 교수는 “권력 악의 핵심을 정조준하는 특검을 응원하는 해시태그(#)를 일제히 붙여보자”면서 ‘#특검힘내라’ 해시태그 붙이기 운동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과거의 거악을 겨냥하는 검찰은 있었지만, 현재의 거악을 직공하는 검찰은 처음”이라며 “특검 인원 얼마 안 된다. 모든 국민이 밀어주고, 응원하고, 수호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장청구 기각으로 인해 특검의 수사의지가 꺾이지 않길 바란다. 특검이 잘 판단하겠지만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증거를 보강해 다시 영장청구를 해야 할 것이다. 특검, 힘을 내길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이외수 작가는 트위터(@oisoo)에 “이재용의 기각을 계기로 국민은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 경제보다 정의구현이 시급하다는 특검의 의지에 국민이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촛불 시민’ 모여라. 국민들은 끝까지 갑니다!
오는 21일 열리는 주말 촛불집회에서 국민의 분노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주부 김송은(37)씨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미 구속된 사람들보다 죄질이 더 나쁜데도 법망을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 삼성공화국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주말에 촛불을 들고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김성도(38)씨는 “사법부는 독립성을 얻기 위해 스스로 제대로 독재나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운 역사가 없는 것 같다”며 “촛불 민심은 적폐의 청산을 요구해 왔는데, 법원 역시 그 적폐의 일원임을 스스로 보여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박홍신(43)씨는 “법을 잘 모르는 국민들이 보기에도 증거는 명백하고, 증거인멸 우려도 있고 구속사유 필요성 상당성도 모두 충족됐는데 이 모든 걸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는 조의연 판사는 파면해야 한다”면서 “주말 촛불집회에서는 법원 개혁의 목소리를 내겠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 이날 오전 긴급성명을 내어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는 21일 열리는 13차 범국민 행동에서 법원이 무너뜨린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퇴진행동은 오후 2시께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특검의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는 필요하고도 적절한 것이었다”며 특검에 영장 재청구를 촉구했다.
박수진 김규남 기자
jjin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