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삼성의 경영권 승계 및 승계를 마무리하는 부분에 관해 삼성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6일 뇌물공여 혐의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이렇게 밝혔다. 정치권력(박근혜 대통령)과 경제권력(이재용 부회장)이 각자의 사적 이익을 위해 결탁한 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국민의 노후자금을 끌어다 쓰도록 힘써주고, 삼성은 그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대통령-비선실세’에게 수백억원을 건넨 ‘권력형 부정부패’라는 성격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을 막으려는 삼성의 법률적 총력전과 일부 언론이 부추기는 경제위기론 모두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특검팀은 이 부회장에게 제3자 뇌물공여라는 ‘정공법’과 단순 뇌물공여라는 ‘안전판’을 동시에 적용하는 ‘투트랙’을 택했다. 삼성전자의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여원은 ‘삼성-박근혜-최순실’ 삼각구도로 얽힌 제3자 뇌물공여로, 최씨 모녀가 대주주인 독일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에 지원을 약속한 213억원은 뇌물공여로 각각 판단한 것이다.
제3자 뇌물공여와 단순 뇌물공여는 범죄의 구성요건이 다르다. 제3자 뇌물죄는 명시적일 필요는 없더라도 최소한 묵시적 수준에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인정돼야 하는 뇌물죄보다 법원이 요구하는 입증 정도가 깐깐하다. 뇌물 수사에 밝은 검찰 관계자는 “특검팀이 법원의 영장 발부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법리적,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각각 200억원 이상이니 어느 한쪽만 인정되더라도 영장 발부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우선 제3자 뇌물은 공무원(박근혜)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받고 제3자(재단 또는 최순실)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한 때에 성립한다. 대법원 판례는 부정한 청탁이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 없이 당사자(박근혜-이재용) 사이에 묵시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특히 공무원(박근혜)의 직무집행(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지시) 자체가 위법하거나 부당하지 않더라도 해당 직무집행이 어떤 대가 관계(삼성의 최순실 지원)와 연결될 때도 부정한 청탁으로 보고 처벌한다.
이번 사건에 대입하면, 박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 사모펀드인 엘리엇의 삼성 경영권 위협에 대응한다는 ‘국익 차원’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건을 챙겨왔다고 주장해왔다. 이 부회장 역시 박 대통령에게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요구하거나 재단 지원금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해왔다. 그러나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삼성 합병이 성사되도록 챙겨 보라’고 명시적으로 지시한 사실, 이 부회장의 핵심 지원조직인 삼성 미래전략실이 동원돼 최씨 모녀 지원 과정 등을 이 부회장에게 보고해온 사실들을 두루 확인했다. ‘부정한 청탁’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만약 특검이 이 부회장을 제3자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하게 되면 박 대통령에게는 제3자 뇌물제공 혐의가 적용된다.
이와 관련해 특검팀은 지난 13일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의 제3자 뇌물수수 사건 재판 결과도 주목하고 있다. 법원은 이 전 의원이 포스코의 고도제한 민원 해결을 지속적으로 접해오는 과정에서 포스코 쪽에 자신의 측근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한 것을 제3자 뇌물제공으로 판단해 실형을 선고했다. ‘이상득(박근혜)-포스코(삼성)-측근(재단 또는 최순실)’이라는 삼각관계, 고도제한 해결(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청탁, 측근에 대한 경제적 지원(최순실에 대한 지원)의 구도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삼성 쪽에서 건넨 433억원 전체를 제3자 뇌물공여로 볼 수도 있지만, 자칫 법원에서 부정한 청탁에 대한 입증이 미흡하다며 영장 전체를 흔들어버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특검팀은 ‘형식적으로’ 이사회가 구성된 미르·케이스포츠 재단과 달리 최순실씨 1인 회사인 코레스포츠에 대한 삼성의 지원금(213억원)은 단순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했다. 최씨가 공무원인 박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박 대통령이 다시 삼성에 요구해 돈을 받아냈다는 것으로 박 대통령과 최씨는 뇌물죄의 공범 관계가 된다. 특검이 이 부회장을 단순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하면 박 대통령은 수뢰 혐의를 받게 된다. 국정 전반에 대한 대통령의 포괄적 직무 관련성에 따른 ‘포괄적 뇌물죄’가 아닌 ‘단순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 사실상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라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박 대통령에게 직접 돈을 건넸다는 식으로 공소장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공여 혐의의 형량은 제3자 뇌물공여 또는 단순 뇌물공여에 상관없이 최대 징역 5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동일하다. 검찰 관계자는 “박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수수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뇌물공여자인 이 부회장은 ‘막연한 기대로 돈을 줬다’고 주장한다면 그 책임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과 ‘이익 공동체’라는 최순실에게 직접 돈을 준 부분을 단순 뇌물로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특검팀은 또 이 부회장에 대해 코레스포츠에 실제 보낸 80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여원 등 총 96억여원의 횡령 혐의 및 청문회 위증 혐의도 적용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기 위해 뇌물자금의 원천으로 삼성전자 돈을 빼돌렸고, 박 대통령은 최씨와 공모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정부의 권한을 동원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들어줬다고 본 것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청문회에서 최씨 쪽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원이 결정되고 실행될 당시 최씨의 존재를 몰랐고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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