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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987년 박종철, 2017년 촛불과 만나다

등록 2017-01-14 18:09수정 2017-01-14 23:01

박종철 열사 30주기 시민들 추모
묘소→남영동 대공분실→광화문으로
“미완의 6월혁명, 촛불이 완성할 것”
14일 오후 민주열사 박종철 30주기 추모제가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열렸다. 추모제 뒤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에 의해 숨진 5층 509호에 시민들이 갖다 놓은 국화꽃이 놓여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14일 오후 민주열사 박종철 30주기 추모제가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열렸다. 추모제 뒤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에 의해 숨진 5층 509호에 시민들이 갖다 놓은 국화꽃이 놓여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가끔 꿈속에서 종철이를 만납니다. 스물세 살 종철이를 본 날은 기분이 아주 좋아 누이에게 전화를 합니다. 제 누이는 그걸 또 부러워합니다. 이제 곧 저는 살아 오는 종철이를 만날 겁니다. 시퍼렇게 되살아오는 민주주의를 마중할 겁니다. 그 민주주의 부둥켜안고 이야기할 겁니다. 고맙다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이제 다시는 쓰러지지도 말자고.”

1987년 1월14일, 경찰의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청년 박종철을 이야기하는 형 박종부(59)씨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2017년 1월14일 올겨울 가장 추운 영하의 날씨를 견디고 서울 광화문광장에 앉은 이들은 30년 전 그의 죽음을 기억하며 “민주주의를 촛불로 완성하자”고 다짐했다.

박종철 열사가 묻힌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그가 목숨을 잃은 서울 남영동 옛 대공분실(경찰청 인권센터)을 거쳐 광화문광장까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와 서울대민주동문회, 서울대총학생회는 열사가 목숨을 잃은 지 꼭 30년이 되는 이날 ‘박종철은 살아있다!’라는 이름으로 그의 흔적이 남은 공간을 돌며 추모제를 열었다. 20대 초반 청년 때부터 그와 함께 대학 시절을 보낸 중년, 억울한 그의 죽음을 밝히려 애썼던 원로들까지 모두가 6월 항쟁 이후 지난 30년을 뛰어넘을 새로운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꿈꿨다.

박종철 열사가 숨지고 6개월 뒤 또다시 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광화문광장 무대에 서서 세월호를 떠올렸다. “자식과 교감을 하지 못하고 산다는 거, 그게 어떤 건지 저도 그 심정을 천번 만번 이해합니다. 저기 세월호 천막 (사진) 속 애들 눈망울 보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된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배씨의 목소리에 광장은 숙연해졌다.

함세웅 신부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뒤이은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타올랐던 6월항쟁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이제 우리 모두가 박종철 같은 촛불이 되어 아름다운 민주주의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은폐됐다는 사실을 폭로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1987년 5월 기자회견을 뒤에서 준비했었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은 세 평 남짓한 옛 대공분실 509호에는 아직 앳된 스물두 살 열사의 영정사진과 국화꽃이 놓였다. 당시를 재현한 욕조와 세면대, 간이침대 사이에서 추모객들은 묵념했다. 이곳을 보고 나온 캐나다인 ㄱ(45)씨는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 역사를 공부하다가 박종철의 이름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정작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열사의 이름을 모르고 있어 안타까웠다”며 “이곳에 와보니 민주주의를 위해 고문을 당하셨던 분, 감옥에 다녀오신 분들이 참 많은데 민주주의를 그냥 공기라고 생각하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반성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30년 전 박종철 열사의 고민은 이제, 당시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된 젊은 후배들에게로 이어졌다. 열사의 서울대 인문대학 후배인 김희지(21)씨는 “촛불로 무언가 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야 하는 더 큰 과제가 우리한테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박종철 열사에게 보내는 추모의 글에서 ‘서울대 박종철 열사 추모비’에 적힌 문구를 인용하며 다짐했다. “박종철 선배의 의지를 따라 희망의 넓이와 깊이를 고민하고, 그렇게 찰나의 광경에 동참하겠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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