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이 5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청와대가 5일 그동안 꽁꽁 감싸고 있던 ‘증인들’ 가운데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을 처음으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정에 내놓았다. 피트니스클럽 트레이너에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과 함께 청와대 3급 공무원으로 깜짝 발탁됐던 그는, 이날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2차 변론에 증인으로 나와 법으로 정해진 자신의 공식업무조차 “말하기 곤란하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모르쇠 전략을 폈다. 반면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당일 행적과 뇌물 혐의가 불거진 의상실 옷값 대납 의혹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에게 유리한 쪽으로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진술을 늘어놓았다.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가장 잘 아는 대통령 본인이 해명하라”는 헌재의 요구에 대해 이날까지도 답변서를 내지 않은 박 대통령이, 핵심 증인들을 순차적으로 내보내는 ‘살라미 방어’로 국회와 헌재의 ‘신문 전략’을 사전 파악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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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당일 오전에도 머리 단정” 이날 증인으로 채택된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 이영선·윤전추 행정관 등 4명 가운데 출석한 사람은 윤 행정관이 유일했다. ‘문고리 3인방’ 두 사람은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고, 이 행정관은 “10일 이후에 불러달라”는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모두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증인 출석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청문회 출석을 앞두고 이·윤 두 행정관에게 휴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출석을 ‘방해’했다.
윤 행정관은 3시간30분간 이어진 증인신문 내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세월호 7시간 의혹 중 ‘오전 행적’에 대한 일부 진술을 했다. 그는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8시30분께 대통령의 호출로 관저에 가 ‘개인적 업무’인지 ‘비공식적 업무’인지를 했다”며 “정확히 어떤 업무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전 9시(이후 10시로 번복)께 대통령에게 서류를 전달하고, 곧이어 안봉근 비서관이 급히 집무실로 올라와 대통령을 만났다”고 했다. 윤 행정관은 “오전에 미용사는 청와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오전 8시30분에도 대통령의 머리와 의상이 정돈돼 있었다”면서도, 참사 당일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가기 전 자신이 미용사를 직접 태우고 청와대로 들어와 대통령 머리손질을 다시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머리손질 시간은 20분 정도로 평소보다 비교적 빨랐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이미 알려진 사실관계와 시간대 사이사이의 빈 구멍을 채우는 진술이지만, 누가 오전에 박 대통령 머리손질과 메이크업을 했는지, 왜 급박한 상황에 또 머리손질을 했는지 등은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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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옷값 직접 줬다” 윤 행정관은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뇌물 의혹이 불거진 박 대통령의 옷값 대납 의혹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에게 줬다”고 진술했다. 그는 “의상을 넘겨받을 때 의상 대금을 직접 지불했느냐”는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의 질문에 “매번은 아니지만 몇 번 정도 한 것 같다. 피청구인(박근혜)이 직접 저에게 밀봉된 노란색 서류봉투를 주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돈이 얼마 들었는지 확인한 적은 없고 만져보면 당연히 돈이겠거니 생각했다. 영수증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옷값을 낸 시기를 묻는 질문에도 윤 행정관은 “과거는 날짜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문제가 되기 전후 (모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 행정관의 발언은 최씨가 박 대통령의 옷값을 냈다는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의 국회 청문회 증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 전 이사는 지난해 12월7일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대통령에게 가방과 옷 100여벌을 만들어줬다. 비용은 모두 최씨가 본인 지갑에서 돈을 줬다. 최씨 개인 돈으로 보였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옷값을 누가 냈는지는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 적용 여부와 직결된 문제로,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이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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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안하무인 아냐” 윤 행정관은 3시간30여분 이어진 증인신문에서 “말하기 곤란하다”는 답변만 20여차례나 했다. “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 “알지 못한다”는 답변까지 합하면 100여차례에 이른다. 윤 행정관은 또 최씨를 두둔하는 말도 했다. 그는 “(최씨가) ‘시녀’라 하긴 그렇지만 (대통령에게) 안하무인이라고 하는 언론 보도와는 다르다. 대통령을 대하는 모습은 공손했다”고 진술했다. ‘최순실이 지시하면 박 대통령이 따르는 관계’라는 검찰과 특검팀의 수사 내용과는 다른 주장인 셈이다.
김남일 김민경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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